귀농과 귀촌

[청년 귀농 실천 가이드 #80] 귀농,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 – 내 삶을 디자인하는 법

윤복E 2025. 7. 25. 07:00

귀농,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

'귀농 준비'라는 말을 떠올리면 많은 사람들이 뭔가를 마무리 짓는다고 생각한다. 도시생활을 정리하고, 회사를 그만두고, 삶의 방식을 전환하는 과정이니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 반대였다. 준비가 길어질수록 알게 되었다. 귀농은 끝이 아니라 '삶을 다시 그리는 새로운 시작'이라는 걸.

도시에서의 나는 늘 무언가를 좇았다. 안정된 수입, 명확한 커리어, 빠른 성과. 하지만 그만큼 자주 지쳤고, 삶이 왜 이렇게 복잡한지도 자주 되물었다. 반면, 귀농을 준비하며 나는 '나에게 진짜 중요한 게 무엇인지'를 처음으로 진지하게 고민했다. 단지 시골로 가는 게 아니었다. 그동안 잠들어 있던 삶의 우선순위를 다시 꺼내는 과정이었다.

나는 왜 귀농을 선택했을까?

누군가는 말한다. 귀농은 실패자들의 선택이라고. 도시에서 안 풀려서 시골로 가는 거 아니냐고.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무언가를 감수하고, 직접 선택한 삶'이 바로 귀농이다.

내가 귀농을 결심한 이유는 단순하지 않았다. 돈 때문도, 무작정 자연이 좋아서도 아니었다. 그보다는 삶의 구조 자체를 바꾸고 싶었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10년을 보내며 느낀 건, 내가 만드는 결과물과 나 사이의 거리감이었다. 내가 하는 일이 누구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지, 내 노력이 어떤 가치를 만들어내는지가 점점 보이지 않았다. 반면, 지인의 농장에서 하루 일손을 도왔을 때의 경험은 달랐다. 내가 심은 모종이 자라고, 내가 수확한 채소를 누군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었다.

아침 7시에 눈을 떠 햇살을 맞고, 내가 심은 것을 돌보고, 직접 만든 것을 사람들에게 전하는 삶. 그건 도시에서는 절대 경험할 수 없었던 일상의 소중함이었다. 물론 이상적인 그림만 그리고 있는 건 아니다. 현실적인 어려움도 충분히 알고 있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선택한 어려움'이라는 점에서 지금과는 다를 것이라 믿는다.

지금까지의 여정, 그리고 배운 것들

이 시리즈를 통해 나는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건강과 체력 준비, 협업의 힘, 자격증 공부, 농산물 유통과 콘텐츠 전략까지. 쓰면 쓸수록 더 또렷해졌다. '귀농은 혼자만의 싸움이 아니라, 지역과 연결되고 나 자신과 깊이 대화하는 시간'이라는 걸.

지난 8개월의 준비 과정을 돌이켜보면, 가장 큰 변화는 '시간에 대한 감각'이었다. 도시에서는 모든 게 빨라야 했다. 빠른 의사결정, 빠른 성과, 빠른 피드백. 하지만 농업을 알아갈수록, 자연의 리듬에는 서두름이 없다는 걸 배웠다. 씨앗이 싹트는 시간, 열매가 익는 시간, 땅이 회복되는 시간... 모든 게 저마다의 속도를 가지고 있었다.

또한 나는 점점 더 느낀다. 정보 하나를 수집하는 데도, 사람 한 명을 만나는 데도, 단순한 행위가 아니라 '기회를 만들고 신뢰를 쌓는 일'이라는 걸.

예를 들어, 지난달 농업기술센터에서 만난 선배 농부님과의 대화는 단순한 정보 교환을 넘어섰다. 그분은 내게 토양 개량제 사용법을 알려주셨지만, 더 중요한 건 "젊은 사람이 농사에 관심을 가져줘서 고맙다"며 건네주신 격려였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내가 단순히 농사 기술을 배우는 게 아니라, 농촌 공동체의 일원이 되어가고 있다는 걸.

지금은 예비 귀농인이지만, 이 시간을 통해 나는 이미 작은 농부가 되어가고 있다. 매일 날씨를 확인하는 습관, 시장에서 농산물을 볼 때 생산자의 마음으로 바라보는 시선, 농업 뉴스에 귀 기울이는 관심... 이 모든 것들이 내 안에서 자연스럽게 자라나고 있다.

내 삶을 디자인하는 법

귀농은 결코 도망이 아니다. 정해진 답이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를 끊임없이 묻는 길이다. 그리고 그 답을 행동으로 옮기는 연습이 바로 지금의 준비 과정이다.

'삶을 디자인한다'는 말이 거창하게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아주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선택들의 연속이다.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부터 시작해서, 어떤 일에 시간을 투자할지, 누구와 관계를 맺을지, 어떤 가치를 우선시할지... 도시에서는 이런 선택들이 대부분 환경에 의해 결정됐다면, 귀농은 내가 직접 이 선택들을 주도할 수 있는 기회다.

물론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 실패할 수도 있고, 예상과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그 결과가 내 선택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도시에서 느꼈던 무력감과는 다르다.

최근 들어 나는 '성공한 귀농'에 대한 정의도 바뀌었다. 처음에는 경제적 안정, 농사의 성과 같은 객관적 지표들을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매일 아침 일어날 때 오늘 하루가 기대되는 삶'이 진짜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미 성공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앞으로의 계획과 다짐

나는 앞으로도 계속 배울 것이다. 토양을 이해하고, 사람을 만나고, 마을 속에서 나의 역할을 찾아갈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내년 봄까지 최종 정착지를 결정하고, 2년 안에 첫 작물을 수확하는 것이 목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그 과정에서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가는지다.

나는 소비자에게는 안전하고 맛있는 농산물을, 지역사회에는 새로운 에너지를 가져다주는 농부가 되고 싶다. 동시에 나처럼 귀농을 꿈꾸는 사람들에게는 현실적인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선배가 되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 누군가가 나에게 물었으면 좋겠다. "당신은 왜 귀농을 했나요?" 그때 나는 웃으며 이렇게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내 삶을 선택하고 싶었어요. 그게 바로 귀농이었어요."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어쩌면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 것이다. 나처럼 아직 땅도, 집도, 수입도 없는 예비 귀농인일지도 모른다. 혹은 귀농은 아니더라도, 지금의 삶에서 무언가 다른 가능성을 찾고 있는 사람일 수도 있다.

하지만 괜찮다. 중요한 건 당장의 조건이 아니라, 삶을 향한 태도다.

준비가 부족해서 망설이고 있다면, 완벽한 준비는 없다는 걸 말해주고 싶다. 준비는 시작하면서 더 구체화되고, 경험하면서 더 단단해진다. 중요한 건 방향성과 의지다.

경제적 부담이 걱정된다면, 귀농이 반드시 전 재산을 걸어야 하는 일은 아니라는 걸 알아두길 바란다. 주말농장부터 시작해서, 반농반X 형태로 점진적으로 접근하는 방법도 있다. 나 역시 아직 완전한 전업농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가족의 반대가 있다면, 충분한 대화와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인정하자. 하지만 동시에 내 인생의 주인은 나라는 것도 잊지 말자. 설득이 안 된다면 결과로 보여주는 방법도 있다.

나는 이 시리즈의 마지막 글에서 당신에게 말하고 싶다.

"천천히, 그러나 반드시 당신의 삶을 걸어가세요. 귀농은 끝이 아닌 시작입니다."

이 시리즈를 통해 나는 많은 것을 배웠고, 나 자신도 성장했다. 무엇보다 혼자가 아니라는 걸 느꼈다. 댓글로, 쪽지로, 때로는 직접 만나서 격려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여러분 덕분에 나는 더 확신을 가지고 이 길을 걸어갈 수 있게 됐다.

비록 지금은 시리즈를 마무리하지만, 이건 정말 끝이 아니다. 실제 귀농을 시작하면 더 생생하고 현실적인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실패담도, 성공담도, 그리고 그 과정에서 느끼는 소소한 일상들도.

우리 모두의 새로운 시작을 응원하며, [청년 귀농 실천 가이드]의 문을 잠시 닫습니다.

그리고 다시, 땅을 향해 걷기 시작합니다.

 

 

P.S. 이 시리즈가 누군가에게 작은 용기라도 되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언젠가 우리 모두 각자의 땅에서 만날 날을 기대하며, 지금은 안녕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