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과 귀촌

[청년 귀농 실천 가이드 #45] “시골에서의 하루는 어떻게 다를까?"

윤복E 2025. 7. 11. 19:32

"귀농, 머리로만 생각하다가… 시골 친구네 집에 한 달 살아봤습니다"

 

귀농을 준비하면서 가장 답답했던 건,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데도 몸으로는 도무지 감이 오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는 점이었다.

책상 위에서 계획을 세우는 것만으로는 결코 알 수 없는 것이 바로 '농촌에서의 삶'이라는 걸, 어느 순간부터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그러던 중, "농사를 짓는 청년" 모임을 통해 알게 된 한 친구가 “한 달 정도 시골에서 함께 지내보지 않겠냐”고 제안해줬다. 그는 전북 완주에서 실제 농업에 종사하고 있었고, 마침 농사철을 맞아 도움이 필요하던 참이었다.

비공식적인 프로그램이긴 했지만, 친구가 직접 운영 중인 농가에서 지내며 일손을 돕고 농촌 생활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였다. 도시 밖의 리듬을 몸으로 느껴볼 수 있는, 말 그대로 ‘귀농 전 리허설’ 같은 시간이었다.

 

 

내가 다녀온 한 달 살이

  • 장소: 전라북도 완주군 외곽 작은 마을
  • 형태: 친구네 농가에서 숙식 제공, 일손 돕기 + 생활 체험
  • 비용: 별도 참가비 없음 (식사와 숙소 제공받고 간단한 일손 보탬)
  • 주요 체험: 봄 작물 파종, 마을 회관 행사 참여, 이웃과의 교류, 시골장 보러 가기 등

어릴때 시골에서 자란 나이지만 오랫만에 마당에 쪼그리고 앉아 고추 모종을 옮겨 심는 일이 왜 그렇게 낯설고 또 재미있던지. 단순한 ‘농사’가 아니라 ‘하루 전체의 리듬’이 완전히 다르게 흐르는 게 인상 깊었다.

 

 

시골의 하루, 이렇게 달랐습니다

시골에서의 하루

- 06:00 – 하루는 ‘빛’과 함께 시작된다

 

: 알람보다 먼저 창문 너머 빛이 나를 깨웠다. 닭 울음보다 빠른 건 할아버지의 트랙터 시동 소리.

  도시와 다르게 시계가 아니라 자연의 리듬으로 하루가 시작됐다.

- 07:30 – 이른 아침, 함께 먹는 밥상이 주는 따뜻함

: 아침을 먹지 않는 나에게는 아침 먹는것도 어색하였다. 그러나 친구 어머님이 해주신 된장국과 열무김치는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았다. 도시의 ‘혼밥’과는 전혀 다른, 함께 준비하고 나누는 감각이 있었다.

- 08:30 – 농사일의 시작은 잡초와의 싸움부터

: 텃밭이든 논이든, 하루의 첫 일은 잡초 제거였다. 기계보다 손이 더 빨랐고, 그늘보다 햇살이 많았다.
내가 도시에서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면, 여기선 ‘하루 종일 몸을 움직이며’ 있었다.

- 12:00 – 정오의 더위는 일단 피하고 본다

: 점심시간엔 일단 그늘 아래서 숨을 돌렸다.
이곳 사람들은 “농사는 오전 10시 전과 오후 4시 이후에 하는 거야”라며, 더운 시간엔 쉬는 것도 기술이라고 했다.

- 14:00 – 오후엔 소소한 생활 기술 배움

  • 비닐하우스 보수하는 법
  • 농기구 간단 수리
  • 텃밭 작물 관찰 일지 작성

하루 중 이 시간이 가장 인상 깊었다.
‘농사는 작물만이 아니라, 환경과 장비까지 돌보는 일’이라는 걸 몸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 18:00 – 해 질 무렵, 오늘의 수확을 정리하며

작은 상자 하나 가득 채소를 따며, 어쩐지 마음까지 꽉 찬 느낌이었다.
말없이 함께 일했던 어르신들과 마주 앉아 삼겹살에 막걸리 한 잔을 나누는 그 풍경은 도시에서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장면이었다.

 

 

직접 살아보니 느낀 점

  • 시골의 하루는 정해진 스케줄이 없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되, 자연의 흐름에 따라 유연하게 일정을 바꿔야 했다.
  • 혼자가 아니다: 이웃이 곧 일손이자 동료다. 동네 할머니와 나란히 앉아 일하고, 마을회관에서 함께 국수를 먹는 순간이 자꾸 생각난다.
  • 불편함보다 배움이 많았다: 인터넷 속도는 느렸지만, 느긋한 마음이 그보다 먼저 필요했다.

체험 후에 알게 된 시골의 리얼한 하루들

도시 생활 시골 체험 생활
사람 중심 자연 중심
정해진 출퇴근 계절과 날씨에 따라 유동적
단절된 관계 마을 단위의 유기적 관계
디지털 기반 감각적·신체적 활동 중심
정보의 과잉 감정의 여백
 

‘시골의 하루’는 여유롭다기보단 리듬이 분명했고, 일은 단순하지만 정신은 깊었다.
단순히 시간표를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사람, 나 자신의 흐름을 따라 살아가는 삶이었다.

 

이 한 달이 내 귀농의 나침반이 되었다

친구 집에서 지낸 한 달은 단순한 체험을 넘어 ‘정착’에 대한 시뮬레이션이었다. 만약 여러분도 귀농을 고민하고 있다면, 굳이 거창한 프로그램이 아니어도 좋다.

지인이 운영하는 농장, 가족의 고향집, 시골 사는 친구를 통해 하루라도 살아보자. 정보는 머리에 남지만, 경험은 몸에 남는다.

 

‘살아보면 다르다’는 말, 진짜였다. 책이나 강의로는 절대 체감할 수 없는 것들이 하루하루 쌓이면서 나를 바꿨다.

친구네 농가에서 지내는 동안, 각 지역의 귀농귀촌종합센터 홈페이지에 소개된 ‘농촌에서 살아보기’ 프로그램이 실제로 어떤 형식으로 진행되는지도 간접적으로 알게 되었다. 공식 신청은 하지 않았지만, 비슷한 구조로 운영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고, 나중에 정식 참여를 검토해볼 계획도 생겼다.

 

나는 지금, 살아보기에서 ‘살기’로 옮겨가는 중입니다

아직 정착하진 않았다.
하지만 ‘시골에서 살아보기’는 단순한 체험이 아니라 나에게 삶을 묻는 시간이 됐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건 농사일까?
아니면 사람들과 어울려 밥을 짓고 계절을 느끼며 사는 일일까?

체험은 현실을 마주하는 도구였고, 미래를 결정하는 나침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