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과 귀촌

[청년 귀농 실천 가이드 #47] “이장님과의 첫 대화 – 지역 커뮤니티에 스며든다는 것”

윤복E 2025. 7. 12. 10:46

귀농 준비자가 꼭 알아야 할 시골 생활의 진실

지역 커뮤니티에 스며든다

땅이 아닌 사람을 보게 된 한 달의 시골 체험

귀농을 준비하면서 막연히 '땅과 농사'만 생각했던 나는, 한 달간의 시골 체험을 통해 전혀 다른 것을 보기 시작했다. 시골은 단순히 '작물'만 키우는 곳이 아니라, '사람'과 함께 살아야 하는 공간이었다.

 

이장님을 처음 만났던 날의 깨달음

친구 농가에서 생활한 지 2주쯤 되었을 때, 친구가 말했다. "너 여기 더 지낼 거면, 이장님한테 한번 인사 드려야 해."

그 말이 어쩐지 무겁게 다가왔다. 도시에서는 아파트 관리사무소장과도 말을 섞지 않고 살아왔는데, 여기서는 '누구와 인사를 했는가'가 곧 당신의 신뢰도를 말해주는 듯했다.

마을회관 옆의 작은 평상에서 노란 모자를 쓴 이장님을 처음 만났다. 처음 보는 나를 보며 쑥스러운 듯 웃으시면서 "오, 젊은 친구가 농사 배우러 왔다고? 하하, 별걸 다 해보네"라고 말씀하셨다. 말은 웃음 섞여 있었지만, 관심과 관찰이 동시에 묻어나는 눈빛이었다.

대화에서 배운 지역 생활의 리듬

이장님은 생각보다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그 중 내 머릿속에 가장 또렷하게 남은 건 두 가지였다.

첫 번째: "시골은 혼자 살 수 있는 데가 아니여."

도시에서는 아는 이 하나 없어도 불편하지 않다. 하지만 시골은 전기가 나가도, 물이 막혀도, 옆집과 마을 사람이 곧 '생활선'이다. 관계는 사적인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지탱하는 구조였다.

두 번째: "너희 젊은 사람들은 너무 급혀."

이장님은 조용히 말씀하셨다. "뭐든 해보는 건 좋은데, 여긴 한번 시작하면 오래 가야 하잖여. 처음부터 큰 꿈 말고, 그냥 옆에 앉아 같이 국수 한 그릇 먹을 생각부터 하셔."

처음엔 '귀농=창업, 농업, 브랜딩' 같은 키워드로 생각했던 나에게 이 말은 살면서 진짜 중요한 게 뭔지를 다시 묻게 했다.

마을 사람들과 어울려보니 보이는 것들

그날 저녁, 친구와 함께 그 고추장으로 비빔밥을 만들어 먹었다. 정말 특별한 맛이었다. 단순히 고추장이 맛있어서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마음과 정성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도시에서는 모든 것을 돈으로 사고팔지만, 여기서는 관계 자체가 화폐였다.

또 다른 기억에 남는 일은 마을 청소 날이었다. 처음엔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참여해보니 전혀 달랐다. 함께 일하면서 자연스럽게 나누는 대화, 일이 끝나고 마을회관에서 함께 마시는 식혜 한 잔. 이 모든 것이 공동체의 일원이 되어가는 과정이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70대 할머니가 내게 건넨 말이었다. "젊은 사람이 와서 같이 일해주니까 고맙다. 우리만 있으면 심심한데."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내가 도움을 받는 것만이 아니라, 나 역시 이 공동체에 무언가를 줄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나는 그때, 시골에서 살아간다는 건 '혼자가 아니라 함께' 살아간다는 의미임을 처음 실감했다. 도시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진짜 공동체의 모습이었다.

관계가 먼저다 – 성공적인 정착의 전제조건

이 체험을 통해 나는 깨달았다. 지역 커뮤니티에 스며드는 것이야말로 정착의 시작이라는 것을.

단순히 농지 면적이나 행정적 지원만 따지며 이주할 곳을 고를 게 아니라, 누가 내 옆에 살아가는지를 보는 눈이 필요했다. 내가 머물고 싶은 곳은 시설이 많은 곳이 아니라, 이장님처럼 내 이름을 불러줄 사람이 있는 곳이었다.

예비 귀농인을 위한 지역 커뮤니티 탐색 가이드

귀농을 고민하는 분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실질적인 방법들을 정리해봤다.

마을회관 행사 참여하기 공개 행사나 국수 나눔 등은 마을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자연스럽게 주민들과 만날 수 있고, 지역의 문화와 관습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장님께 먼저 인사 드리기 무조건 예의를 갖추는 게 지역사회에 들어가는 첫 걸음이다. 이장님은 마을의 소식통이자 연결고리 역할을 하시기 때문에, 첫 인사가 매우 중요하다.

청년 귀농자 모임 활용하기 각 지자체나 농업기술센터에 등록된 청년 네트워크를 활용해보자. 비슷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과의 만남은 정착 과정에서 큰 도움이 된다.

작은 도움 주기부터 시작하기 마을 행사에 자원봉사처럼 참여해보면 자연스럽게 관계가 열린다. 거창한 것보다는 작은 도움부터 주는 것이 신뢰를 쌓는 좋은 방법이다.

사람을 보고 지역을 고민합니다

지금 나는 땅보다 사람을 중심으로 정착지를 고민하고 있다. 살아보니 알겠다. 시골은 자연보다도 '관계'가 우선인 삶의 방식이다.

농지의 조건이나 교통 편의성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은 그곳에서 함께 살아갈 사람들의 마음이다.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공동체 문화가 있는 곳에서야 진정한 시골 생활이 가능하다는 것을 배웠다.

귀농을 꿈꾸는 당신에게

귀농을 생각하는 당신에게도 꼭 말해주고 싶다. 가장 먼저 들여다봐야 할 건 '농지 정보'가 아니라, 그곳에서 함께 살아갈 사람들의 얼굴이라는 것을.

시골 생활의 성공 여부는 결국 사람과의 관계에서 결정된다. 농사 기술은 시간이 지나면 늘지만, 한번 틀어진 인간관계는 회복하기 어렵다. 그래서 정착 전 충분한 시간을 들여 지역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보는 것이 중요하다.

나의 한 달 체험은 끝났지만, 이제 진짜 시작이다. 사람을 중심으로 한 귀농 계획을 세우고, 진정한 시골 생활을 준비해보려고 한다. 땅과 농사만으로는 부족했던 귀농의 퍼즐이 이제야 완성되어 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