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을 결심하고 나서 나는 수없이 많은 블로그, 유튜브, 공공기관 자료들을 검색했다. 행정구역별 인구 감소율부터 일조량, 지자체의 귀농 지원 정책까지 엑셀로 정리한 자료만 수십 개였다. 하지만 화면 속 정보만으로는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직접 현장을 보기로 했다. 책상 위에서 판단했던 수치들이 현실에서 어떻게 다르게 다가오는지, 이번 글에서 예비 귀농인의 눈으로 직접 경험한 귀농지 답사의 과정을 나누려 한다.
답사를 결심한 이유: 책상 위 정보는 한계가 있다
초기에는 나 역시 귀농 예정지를 정하기 위해 지도와 통계에만 의존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현실과 정보 사이의 간극이 느껴졌다. 아무리 ‘지원금이 많다’고 해도, 실제 그 지역이 내 삶과 맞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사람’과 ‘공간’은 텍스트로 해석되지 않는다. 그래서 결심했다. 최소 3개 지역 이상은 반드시 직접 가보자고.
지역 선정 기준: 내 기준을 세우는 게 먼저
답사할 지역을 고르기 위해 나는 다음 네 가지 기준을 세웠다.
- 접근성 – 서울에서 대중교통으로 2시간 반 이내
- 농지 가격 – 임대 혹은 소규모 구매가 가능한 범위
- 귀농 정책 – 청년귀농 창업지원금 및 귀농인 정착 지원 여부
- 기후와 토양 – 과수 재배에 유리한 기후대
이 기준에 부합하는 세 지역(경기 북부 A군, 충남 서해 B시, 경남 내륙 C읍)을 최종 리스트로 정하고, 각각 1~2일씩 현장에 머무르며 답사를 진행했다.
내가 다녀온 세 지역 – 장단점 비교
A군 – 자연은 최고지만 생활 인프라가 부족
산 좋고 물 맑다는 말이 어울리는 곳이었다. 경치도 좋고 공기도 맑았으며, 이미 귀농한 젊은 부부가 운영하는 카페도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마을 중심지에서 마트까지 차량으로 30분 이상, 병원은 더 멀었다. ‘자급자족’을 꿈꾼다면 괜찮을 수도 있지만, ‘기본 생활’에 민감한 사람에게는 적합하지 않아 보였다.
B시 – 정책은 좋았지만, 땅이 없다
이 지역은 귀농 정착지원금과 농업기술센터의 컨설팅이 매우 체계적이었다. 실제로 귀농 교육도 현장에서 이루어지고 있었고, 청년 귀농인을 위한 커뮤니티도 활발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농지 구입이 어렵고, 임대 가능한 농지는 이미 오래전부터 지역 주민들이 선점한 상태였다. “지원은 있는데 할 땅이 없다”는 말이 현실로 다가왔다.
C읍 – 스마트팜의 가능성과 보수적인 분위기
C읍은 스마트팜 시범단지가 조성 중이었고, 지자체 차원에서 유통 연계 시스템도 구축하고 있었다. 나처럼 디지털 농업에 관심 있는 청년에게는 유망해 보였다. 하지만 실제로 마을 주민을 만났을 때 느낀 분위기는 보수적이었다. “젊은 사람이 왜 여기 오려 하냐”는 말은 웃으며 한 말이었지만, 나는 그 웃음 속 불편함을 느낄 수 있었다.
현장에서 확인해야 할 체크리스트 7가지
- 인터넷 통신 속도 – 일부 지역은 LTE조차 잘 안 터진다
- 도로 상태 – 주택 앞까지 포장이 안 되어 있어 진입이 어려운 곳도 존재한다
- 일조량과 바람 – 농지 주변에 산이 있으면 일조량 차이가 크다
- 마을 분위기 – 이웃의 연령대와 외지인에 대한 태도
- 주택 상태 – 오래된 빈집의 수도, 전기, 보일러 상태 필수 점검
- 생활 소음 – 낮에는 조용하지만 개 짖는 소리, 마을 방송 주의
- 관공서 거리 – 농협, 면사무소, 보건소 등의 위치 확인
체크리스트를 미리 준비하고 가자. 현장에서는 감정적으로 판단하기 쉬운데, 객관적인 기준을 적어두고 체크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사진을 많이 찍어두자. 나중에 여러 지역을 비교할 때 사진만큼 확실한 것이 없다. 특히 농지의 경사도나 주변 환경은 사진으로 남겨두면 나중에 다시 검토할 수 있다.
현지 식당에서 식사를 해보자. 마을 사람들이 주로 이용하는 곳에서 식사하면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눌 수 있고, 지역 분위기도 파악할 수 있다.
가능하다면 주말보다는 평일에 방문하자. 평일에 마을이 어떤 모습인지 보는 것이 실제 생활과 더 가깝다.
혼자 가기보다는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가자. 다른 사람의 시각에서 본 의견도 중요하다.
답사 후 내가 느낀 것들
나는 답사를 통해 ‘지원 정책이 좋다’보다 더 중요한 것이 ‘내가 여기에 살 수 있는가’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귀농은 이사 수준이 아니라 삶의 형태 전체를 바꾸는 일이다. 결국, 마음이 끌리는 지역과 현실적 여건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 정책은 해마다 바뀌지만, 마을 분위기와 땅의 느낌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기 때문이다.
예비 귀농인을 위한 조언
- 지역 농업기술센터에 먼저 연락해서 현장 프로그램이 있는지 확인하자.
- 무작정 가기보다, 최소한의 지역 정보와 브로슈어는 챙기자.
- 주변 부동산 중개소를 여러 군데 방문해서 가격 비교를 해보자.
- 마을 어르신들과 이야기할 땐, 공손한 인사와 ‘왜 이 지역이 좋은지’에 대한 질문으로 접근하면 경계심을 줄일 수 있다.
나는 지금, 내 뿌리를 내릴 땅을 찾는 중입니다
귀농은 밭을 고르는 일인 동시에, ‘살아갈 자리’를 찾는 일이다. 나는 아직 최종 결정을 내리진 않았지만, 이번 답사를 통해 어떤 지역에서 어떤 기준으로 판단해야 할지 분명히 알게 되었다. 귀농 예정지에 대한 자료를 검색하고 있다면, 지금이라도 시간을 내어 발로 밟아보기를 권한다. 땅의 냄새, 사람들의 눈빛, 하늘의 빛까지 느껴야 비로소 진짜 나의 귀농이 시작될 수 있으니까.
답사를 다니면서 만난 사람들은 하나같이 말했다. "힘들지만 후회하지 않는다"고.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것들이 농촌에는 있다고. 물론 로맨틱한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현실적인 어려움들도 많다. 하지만 그 어려움들을 감수하고도 남을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그들의 표정에서 읽을 수 있었다.
이제 나는, 그날 만난 햇살 한 조각을 마음에 품고 또 다른 마을을 향해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언젠가는 나도 누군가에게 "힘들지만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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