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풍요로운 심심함을 배우는 중입니다."
“시골 가면 심심하지 않아?” 귀농을 준비한다고 말할 때마다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 중 하나다.
처음엔 “바빠서 심심할 틈도 없을걸?” 하고 웃어넘겼지만, 솔직히 말해 처음엔 나도 걱정됐다.
나처럼 도시의 빠른 흐름에 익숙해진 사람이, 그 느리고 조용한 시골에서 과연 심심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하지만 지금 나는 이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다. “네, 심심해요. 그런데요, 그게 꼭 나쁜 건 아니더라고요.”
처음 마주한 '심심함'이라는 감정
도시에서의 삶은 늘 ‘채워진 시간’이었다. 아침엔 출근 준비로 바쁘고, 낮엔 회의와 일로 정신없고, 저녁엔 약속이나 OTT로 빈틈없이 꽉 찬 하루. 그런 도시에서 살다 보니, 무언가 하지 않으면 불안했다. 시간을 비워두는 게 익숙하지 않았다.
귀농을 준비하며 체험 마을에 머물던 어느 날, 오전 작업을 마치고 오후 일정이 비는 시간이 생겼다. 주변엔 카페도 없고, 상점도 없고, 그 흔한 편의점도 없었다. 처음엔 스마트폰으로 시간을 때우려 했지만, 신호가 약해 유튜브도 잘 안 됐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작은 나무 그늘 아래 앉았다. 그리고 멍하니 주변을 바라봤다. 그 시간이 약간은 불편했고, 약간은 어색했지만, 묘하게 마음이 가라앉는 기분이 들었다.
느린 시간 속에서 생긴 변화
그날 이후로, 나는 일부러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하루에 30분씩, 스마트폰 없이 자연 속에서 멍하니 앉아 있는 시간을 루틴처럼 만들었다.
처음 며칠은 불안했다. “이렇게 시간을 써도 되나?” 싶은 죄책감도 들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내 머릿속이 조용해지기 시작했다.
도시에서는 늘 다음 할 일을 고민하느라 분주했는데, 시골에서는 지금 이 순간에 더 집중하게 됐다.
심지어 그 멍하니 있는 시간에 아이디어도 떠올랐다. 블로그 주제, 재배할 작물, 브랜드 이름, 심지어 미래에 만들고 싶은 농촌 체험 콘텐츠 기획안까지. 심심함이 창조성을 자극한다는 말, 그게 진짜였다.
'심심함'이 주는 다섯 가지 선물
- 감각이 예민해진다 : 바람 소리, 새소리, 흙 냄새, 볕의 각도까지 평소라면 지나쳤을 자극들이 선명하게 느껴진다. 도시에서는 너무 많은 자극에 둔감해져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 내면의 목소리가 들린다 : 바쁘게 살 땐 들을 수 없었던 내 감정, 욕망, 두려움이 조용히 올라온다. 그걸 받아들이는 연습이 된다. 때로는 불편하지만, 그 과정에서 진짜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게 됐다.
- 진짜 ‘쉼’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 영화나 넷플릭스에 의지하지 않고도 머릿속이 맑아지는 경험. 멍하게 있는 시간이 곧 힐링이 된다. 이게 진짜 휴식이구나 싶었다.
- 혼자 있는 법을 배운다 : 고독이 외로움이 아니라는 걸 체험한다. 누군가와 있지 않아도 안정감을 느끼게 된다. 나 자신과 친해지는 시간이었다.
- 나만의 리듬이 생긴다 : 누가 정해준 시간표가 아닌, 내 호흡에 맞춘 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된다.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쉬는 자연스러운 리듬 말이다.
예비 귀농인을 위한 ‘심심함’ 적응 팁
- 처음부터 시간을 다 채우지 마세요
교육, 농장체험, 네트워크 등 바쁘게 움직이기보다 일부러 '빈 시간'을 계획하라. 그 시간이 오히려 가장 값진 시간이 될 수 있다. - 스마트폰 없는 시간 실험해보세요
하루 30분만이라도 전원을 꺼자. 불편하지만 익숙해지면 정말 강력한 변화가 온다. 처음엔 5분도 힘들었는데, 지금은 1-2시간도 괜찮다. - 아날로그 활동을 취미로 만들어보세요
독서, 손글씨, 그림, 바느질, 자연 관찰 등 전자기기가 필요 없는 취미가 '심심함'을 품는 데 도움이 된다. 나의 일상생활을 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장소의 그림을 그리면 색다른 느낌의 나의 일상을 확인 할수 있어 색다른 재미에 빠질것이다. - 일기를 써보세요
심심한 시간에 떠오르는 감정과 생각을 기록하라. 그게 훗날 큰 자산이 된다. 몇 달 후에 다시 읽어보면 내가 얼마나 변했는지 알 수 있을것이다. - 자연과 함께하는 시간을 늘리세요
정원 가꾸기, 산책, 별 보기 등 자연과 함께하는 활동들이 심심함을 받아들이는 데 도움이 된다. 자연은 가장 좋은 선생님이기에
나는 지금, 심심함을 배우는 중입니다
지금 나는 여전히 도시와 시골 사이 어딘가에 있다. 아직 완전히 귀농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도시 삶이 편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나는 시골의 심심함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심심함은 나를 불안하게 하는 감정이 아니라, 나를 회복시키는 과정이라는 걸 알게 됐다. 바쁘지 않아도 괜찮고, 무언가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조금씩 익히고 있다.
귀농을 준비하는 당신도, 혹시 ‘할 게 없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있다면, 그 시간을 두려워하지 말고 받아들여보자. 때로는 심심함이, 가장 풍요로운 자양분이 되어줄 수 있다.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이제 나는 ‘무엇을 하느냐’보다 ‘어떻게 살아가느냐’를 고민하는 예비 귀농인이 되었다. 심심함 속에서 나는 조금 더 나에게 가까워지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확신한다. 시골의 심심함은 결핍이 아니라 선물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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