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과 귀촌

[청년 귀농 실천 가이드 #34] "시골에서는 시간이 다르게 흐른다 – 귀농 준비 중 만든 나만의 루틴"

윤복E 2025. 7. 8. 03:07

"시골에서는 시간이 다르게 흐른다 – 귀농 준비 중 만든 나만의 루틴"

 

귀농을 준비하며 가장 크게 체감한 변화는 ‘시간의 감각’이었다. 도시에서는 늘 분 단위로 움직였다.

알람을 맞춰 일어나, 지하철 시간에 맞춰 출근하고, 점심시간은 1시간, 퇴근은 오후 6시,

저녁 약속은 7시. 마치 분침이 나를 끌고 다니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귀농을 진지하게 고민하면서부터 시간은 완전히 다르게 다가왔다.

나는 아직 도시를 떠나지 않았지만, 귀농을 전제로 생활 루틴을 바꿔보기로 했다.

일종의 ‘예비 시골 루틴’을 만드는 실험이었다.

이 글에서는 그 변화의 과정과, 루틴을 통해 느낀 시간의 재정의, 그리고 이를 통해 생긴 삶의 작은 변화들을 공유하고자 한다.

도시의 시간 vs 시골의 시간

도시의 시간은 언제나 ‘빠름’을 전제로 움직인다. 회의 시간, 마감 시간, 약속 시간. 모든 것이 촘촘하게 짜인 계획 속에 돌아가고, 시간을 놓치면 기회도 놓치는 구조다. 하지만 내가 참여한 농촌 체험 프로그램에서 만난 한 농민은 이렇게 말했다.

“여긴 비 오면 일이 멈춰요. 계절 따라 일도 바뀌고, 해가 길어지면 하루도 길어지지.”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묘한 충격을 받았다. 그들에게 시간은 시계나 달력이 아니라 자연의 리듬에 따라 흐르고 있었다. 계절과 날씨, 일출과 일몰이 일과를 정하고, 사람들은 그 흐름에 몸을 맞춘다. 시골에서의 시간은 '순환'이고, 도시의 시간은 '선형'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체험 농장에서 일주일을 보내며 더욱 확실해진 것은, 시골의 시간은 '기다림'을 포함한다는 것이다. 씨앗을 심고 기다리고, 비가 오기를 기다리고, 계절이 바뀌길 기다린다. 반면 도시의 시간은 '즉시성'을 추구한다. 빨리 처리하고, 빨리 결과를 보고, 빨리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시골에서는 시간이 다르게 흐른다

예비 귀농인으로서 시작한 ‘루틴 실험’

귀농을 계획하면서 나는 하루 루틴을 바꿔보기로 했다. 직접 농사를 짓지 않더라도 시골에서의 일상을 상상하며, 도시 속에서 실현 가능한 작은 루틴부터 만들어간 것이다.

 

- 아침 6시 기상 → 햇살 아래 산책

도시에서는 7시 반 기상, 8시 출근이었지만, 지금은 아침 6시에 일어난다. 창문을 열고 햇빛을 맞으며 20~30분 정도 동네를 걷는다. 처음에는 억지로 일어났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눈이 자연스럽게 떠지기 시작했다. 아침 햇살은 상쾌하고, 뇌도 맑아지는 느낌이다.

이 시간 동안은 스마트폰을 보지 않기로 했다. 대신 계절의 변화를 관찰하고, 새소리를 들으며, 하루를 어떻게 보낼지 생각한다. 놀랍게도 이 작은 변화가 하루 전체의 리듬을 바꿔놓았다.

 

-  7시 30분 → 뉴스 대신 귀농 리서치

예전에는 아침 식사 후 TV 뉴스를 틀었지만, 지금은 귀농 관련 리서치 시간을 갖는다. 지자체 홈페이지, 농업기술센터 공고, 귀농 유튜브 채널 등을 살펴보며 내게 필요한 정보를 수집한다. 이 시간 동안은 무조건 '농업'과 '시골' 관련 콘텐츠만 본다. 관심의 방향을 의식적으로 정리하는 셈이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각 지역의 특산물과 농법을 조사하는 일이었다. 강원도의 감자, 전남의 벼농사, 경북의 사과 등 지역마다 다른 농업 환경을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했다.

 

-  오전 10시~12시 → 체험 신청, 전화상담, 온라인 교육

매주 한두 번은 농촌 체험 프로그램이나 교육 신청을 하고, 지역 농업기술센터에 직접 전화를 걸어 궁금한 걸 묻는다. 요즘은 온라인으로도 귀농 교육이 많아져서 줌으로 수업을 듣기도 한다. 놀라운 건, 이런 루틴이 내 일상에 생기를 불어넣는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전화를 걸기가 어색했지만, 점점 자연스러워졌다. 농업기술센터 직원들은 생각보다 친절하고, 실질적인 조언을 많이 해준다. 어떤 작물이 초보자에게 좋은지, 어떤 교육부터 받아야 하는지, 지역별 특성은 무엇인지 등을 구체적으로 알려준다.

 

-  오후 2시 → 블로그 정리, 콘텐츠 작성

귀농 과정을 기록하는 블로그를 운영하면서부터는 매일 오후 2시에 1시간 이상 콘텐츠를 정리한다. 내가 모은 정보, 들은 이야기, 나의 고민 등을 글로 쓰는 시간은 일종의 '정리 타임'이다. 정보와 감정이 함께 정리되고, 내 계획도 점점 더 구체화된다.

글을 쓰다 보면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어떤 부분이 막연한지가 명확해진다. 그러면 다음 날 리서치나 상담에서 더 구체적인 질문을 할 수 있다. 이렇게 선순환이 만들어진다.

 

-  저녁 7시 이후 → 독서 또는 휴식

하루를 정리하며 귀농 관련 책이나 자료를 읽는다. '반농반X', '귀촌 에세이', '스마트팜 기술서' 등 다양한 장르의 책을 읽으며 상상력을 키운다. 가끔은 그냥 잔잔한 음악을 들으며 휴식을 취하기도 한다.

특히 실제 귀농인들의 에세이를 읽을 때면, 내가 놓치고 있는 현실적인 부분들을 발견하게 된다. 로맨틱한 전원생활만 꿈꿨는데, 실제로는 고된 노동과 경제적 어려움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느끼는 만족감과 성취감에 대한 이야기는 내게 큰 용기를 준다.

 

루틴을 만들고 나서 달라진 점

  1. 불안이 줄었다 : 구체적인 루틴은 막연한 귀농의 불안을 줄여준다. ‘언젠가’가 아니라 ‘지금 무엇을 하고 있다’는 느낌은 정신적으로 큰 안정감을 준다. 특히 매일 작은 진전이 있다는 느낌이 중요했다.
  2. 삶의 속도가 조절됐다 : 도시의 시간은 항상 쫓기듯 흘렀지만, 루틴을 통해 나는 속도를 내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게 됐다. 급하게 서둘러야 할 일과 천천히 해도 되는 일을 구분하는 능력이 생겼다.
  3. 작은 성취감이 생겼다 : 매일 블로그 글을 쓰거나, 교육 수업을 듣고 나면 ‘오늘도 한 발짝’이라는 뿌듯함이 생긴다. 이것이 장기적으로 큰 원동력이 될 거라고 믿는다.
  4. 상상력이 현실화되기 시작했다 : 처음엔 막연했던 귀농의 그림이 루틴 속 활동을 통해 점차 ‘현실 가능한 계획’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어떤 지역에서, 어떤 작물을, 어떤 방식으로 키울지에 대한 구체적인 그림이 그려지고 있다.
  5. 새로운 인맥이 생겼다 : 온라인 교육이나 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과 연결되기 시작했다. 이들과의 정보 교환과 격려는 혼자서는 얻을 수 없는 소중한 자산이다.

✍️ 예비 귀농인을 위한 루틴 만들기 팁

  • '농사 루틴'이 아니라 '귀농 루틴'을 먼저 만들어라 : 실제로 농사를 짓기 전에 귀농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와 준비가 선행되어야 한다.
  • 정보 수집만 하지 말고, 나만의 기록을 남겨라 : 블로그, 일기, 영상 등 어떤 형태든 기록을 남기면 나중에 큰 도움이 된다.
  • 루틴을 SNS나 블로그 콘텐츠로 전환해보라 : 기록을 공유하면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다.
  • 새벽과 아침 시간대를 적극 활용하라 : 시골 리듬은 아침이 핵심이다.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쉬는 리듬을 미리 연습해보자.
  • 루틴은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 중요한 건 '지속성'이다. 80% 성공해도 충분하다.
  • 오프라인 활동을 반드시 포함하라 : 온라인 정보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직접 체험하고, 사람을 만나는 시간을 만들어라.
  • 실패와 시행착오를 기록하라 : 실패한 경험도 중요한 학습 자료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분석하고 기록해두자.

🌱 나는 지금, 시골의 시간을 연습하는 중입니다

귀농 준비 나는 지금, 시골의 시간을 연습하는 중

귀농은 단지 장소를 바꾸는 일이 아니다. 나는 지금 도시에서 시골의 시간을 연습하고 있다. 루틴은 단순한 일정표가 아니라, 내가 살아가고 싶은 삶의 방식에 대한 훈련장이다.

매일 아침 햇빛을 맞고, 정보를 모으고, 사람들과 연결되고, 글을 쓰는 이 흐름 속에서 나는 점점 더 ‘시골 사람’으로 변하고 있다. 땅을 밟지 않아도, 농사를 짓지 않아도, 이미 나의 마음과 시간은 시골에 닿아 있다.

가끔 친구들이 묻는다. "언제 실제로 내려갈 거야?" 하지만 나는 이미 시작했다고 답한다. 귀농은 이사하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움직이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귀농을 고민하는 당신도, 시골 루틴부터 연습해보면 어떨까? 그것이 진짜 '전원생활'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중요한 건 완벽한 계획이 아니라, 지금 당장 시작하는 작은 루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