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을 준비하기 전, 나는 늘 '일'이라는 걸 생산성과 수익성으로만 바라봤다. 정해진 시간에 회사에 출근하고, 결과물을 내고, 급여를 받는 구조. 도시의 일은 명확하고 효율적이었다. 그래서 처음 귀농을 고민할 때 나는 막연히 이렇게 생각했다. “시골에 가면 일의 강도는 줄고, 삶의 여유는 늘어나겠지.”
하지만 리서치를 시작하고, 체험 프로그램과 선배 귀농인들의 이야기를 접하며 그 생각은 완전히 바뀌었다. 귀농을 준비하면서 나는 '노동'이라는 개념을 다시 정의하게 되었다.
시골의 일은 '시간'이 아닌 '삶'과 붙어 있다
도시의 일은 '출근-업무-퇴근'이라는 구조로 나뉜다. 하지만 시골의 일, 특히 농사라는 것은 그 경계가 없다. 계절을 따라 움직이고, 날씨에 따라 결정되며, 심지어는 새벽부터 밤까지도 이어진다. 누가 지켜보는 것도 없고, 상사가 존재하지도 않지만 오히려 더 스스로를 단단히 조율해야 한다.
귀농 선배는 말했다. “도시의 일은 시간을 파는 것이지만, 농촌의 일은 몸을 담그는 거예요.” 그 말이 처음엔 추상적으로 들렸지만, 체험 농장에서 하루를 보내고 난 후에야 무슨 뜻인지 알게 되었다. 감자밭에서 하루 종일 몸을 움직이고, 다음 날에는 허리가 펴지지 않는 그 경험 속에서, 나는 '몸을 쓰는 노동'의 무게와 보람을 동시에 느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비 오는 날의 경험이었다. 도시에서는 비가 와도 지하철을 타고 사무실로 출근하면 그만이지만, 농촌에서는 비가 오면 그날의 모든 계획이 바뀐다. 대신 농기구를 정리하고, 내일 할 일을 준비하며, 비 온 뒤 밭의 상태를 점검하는 일이 새로운 업무가 된다. 자연의 리듬에 맞춰 일하는 것이 얼마나 다른 감각인지 체감했다. 날씨와 상황 에 따라 나의 생활도 변할수있다는 것이다.
내 루틴이 무너지고 새로 만들어졌다
도시에서의 내 루틴은 규칙적이었다. 오전 7시에 기상, 8시 출근, 6시 퇴근, 저녁엔 헬스장이나 카페. 주말엔 친구들과의 약속. 하지만 귀농 준비를 하며 농업 교육, 지역 탐방, 체험 활동이 늘어나면서 나의 루틴은 완전히 무너졌다. 대신 '자연'을 중심으로 한 루틴이 만들어졌다.
이제는 새벽 5시에 일어나 교육센터로 향하고, 한낮의 뙤약볕은 피하고, 해가 지면 기록을 정리하며 다음 날 작업을 준비한다. 무언가를 생산한다는 것이 단지 기계적인 반복이 아니라, 자연과 대화하며 일어나는 일이란 걸 몸으로 깨달았다.
'나는 무엇을 위해 일하는가'라는 질문
귀농 준비를 하며 내 안에 가장 크게 자리 잡은 질문이 있다. “나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일하려 하는가?”
도시에서는 대부분이 생계와 커리어, 경쟁과 성장을 위한 일이었다. 하지만 시골에서의 일은 생계는 물론이거니와 자급자족의 감각, 공동체와의 협력, 그리고 삶 자체에 가까웠다.
내가 꿈꾸는 귀농은 ‘반농반X’에 가깝다. 농업을 기반으로 하되, 내가 할 수 있는 콘텐츠 작업, 디자인, 글쓰기 등과 병행하는 삶. 그래서 더욱이 ‘일’이라는 개념을 유연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농업은 단순히 육체노동이 아니라, 공간과 관계, 시간과 가치를 다시 짜는 일이기도 하니까.
이런 고민을 하던 중, 한 선배 농부가 해준 말이 있다. "농사는 돈벌이 수단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에요. 내가 먹을 것을 내 손으로 기르고, 남은 것으로 이웃과 나누고, 그 과정에서 자연과 관계를 맺는 거죠." 그 말을 듣고 나서야 내가 추구하는 일의 의미가 명확해졌다.
도시와 시골, 일의 차이를 느낀 포인트
- 성과의 시간차
- 도시: 결과가 즉시 도출됨 (보고서, 매출 등)
- 시골: 농사는 수확까지 최소 수개월이 걸림. 인내와 기다림의 미덕 필요
- 협업 방식의 차이
- 도시: 팀과 부서 중심의 협업
- 시골: 마을 단위, 가족 단위, 혹은 1인 체제로서의 유연한 협력
- 기술과 감각의 융합
- 도시: 주로 디지털 기반, 이론 중심
- 시골: 몸의 감각, 경험 중심. 단순 반복이 아닌 ‘감’이 중요함
- 일의 사회적 인식
- 도시: 직업 정체성 중심(“무슨 회사 다니세요?”)
- 시골: 생활과 일의 구분이 흐려짐. “요즘 뭘 키우세요?”
- 실패와 성공의 기준
- 도시: 명황학 KPI와 수치적 목표
- 시골: 작황, 날씨, 경험의 축적 등 복합적 요소로 평가
예비 귀농인을 위한 질문 리스트
귀농을 준비하며 스스로에게 던져봐야 할 질문들을 정리해보았다.
- 나는 결과가 늦게 오는 일에도 만족할 수 있을까?
- 몸을 직접 움직여 일하는 삶에 준비가 되어 있는가?
- 시간보다 '과정'에 가치를 둘 수 있는가?
- 수익 외에도 ‘살아가는 느낌’을 중요하게 여기는가?
-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유연하게 적응할 수 있는가?
- 혼자 일하는 시간이 많아져도 견딜 수 있는가?
- 실패를 학습의 기회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
이런 질문들을 나 자신에게 던져보면서, 나는 귀농을 단순한 이주가 아닌 '노동의 가치'를 바꾸는 과정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나는 지금, 새로운 ‘일’의 정의 위에 서 있다
귀농 준비는 단순히 직업을 바꾸는 일이 아니었다. 내가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 어떤 방식으로 세상과 관계 맺고 싶은지에 대한 질문이기도 했다. 지금 나는 아직 씨를 뿌리지 않았다. 하지만 어떤 땅에 뿌릴지, 어떤 방식으로 키울지를 매일 고민하며 준비하고 있다.
노동이란 단어가 도시에서는 '피로'와 연결되었다면, 시골에서의 노동은 '살아있음'과 연결된다. 예비 귀농인으로서 나는 지금, 매일 새로운 정의를 만들어가는 중이다.
그 여정은 결코 가볍지 않지만, 점점 더 단단해지고 있다. 때로는 불안하고, 때로는 설레며, 하지만 확실한 것은 내가 추구하는 '일'의 의미가 전보다 훨씬 풍부해졌다는 것이다.
이제 나에게 일이란 단순히 생계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삶을 구성하는 하나의 방식이다. 그리고 그 방식을 통해 나는 더 온전한 나로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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