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과 귀촌

[청년 귀농 실천 가이드 #36] ‘지금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나는 농촌 봉사활동부터 시작했다.

윤복E 2025. 7. 8. 17:34

귀농을 결심한 뒤 가장 막막했던 순간은, 모든 정보를 모은 뒤였다. 농지 구입, 지원금, 작물 선택, 마을 분위기까지 공부했지만 정작 '지금 내가 뭘 해야 할까?' 하는 질문 앞에서는 길이 보이지 않았다. 그럴 때 나는 컴퓨터를 닫고 밖으로 나갔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 오히려 불안이 커졌기 때문이다. ‘일단 뭐라도 해보자’는 마음으로 찾은 게 바로 농촌 봉사활동이었다.

나는 농촌 봉사활동부터 시작했다

“농사를 짓지 않아도, 농촌을 도울 수 있다”는 사실

처음엔 단순한 발상이었다. 직접 농사를 짓지는 못하더라도, 농촌의 일을 도우며 현장을 체험하면 나중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렇게 검색을 시작했다. '농촌 일손 돕기', '농번기 봉사', '도농 교류 봉사활동' 같은 키워드로 찾다 보니 의외로 다양한 기회가 눈에 들어왔다.

인터넷에서 정보만 찾던 내가, 처음으로 '행동'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찾은 순간이었다. 봉사라는 이름으로 농촌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게 이렇게 반가울 줄 몰랐다.

봉사활동을 찾은 곳들

  • 1365 자원봉사 포털: 지역별로 농촌 봉사 프로그램이 수시로 게시된다. 검색 필터를 '농업·농촌'으로 설정하면 생각보다 많은 프로그램이 나온다. 특히 농번기인 5-6월, 9-10월에 활동이 집중된다.
  • 지자체 농업기술센터 홈페이지: 각 시군의 농업기술센터에서 농번기 일손 부족 시기에 마을 단위로 봉사자를 모집한다. 공지사항을 자주 확인하거나 직접 전화로 문의하면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 귀농귀촌종합센터: 체험과 봉사를 결합한 프로그램을 다수 운영한다. 단순한 일손 돕기가 아니라 농촌 생활 전반을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많아서 예비 귀농인들에게 특히 유용하다.
  • 지역 대학 및 시민단체: 주말 체험 봉사나 농가 방문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곳이 많다. 대학생들과 함께 하는 활동이라 에너지가 넘치고, 농가 어르신들도 좋아하신다.

그 중 나는 1365 자원봉사 포털에서 경기도 여주의 한 마을에서 진행하는 '농가 복합 봉사활동'에 신청했다. 일정은 1박 2일, 체류형이며, 마을 공동텃밭 잡초 제거, 노령 농가 일손 돕기, 마을 환경정화 활동이 주된 내용이었다.

봉사라는 이름으로 시골을 체험하다

도착한 마을은 작지만 잘 정돈된 곳이었다. 고령화가 진행되었고, 농번기에는 외부 도움 없이는 감당이 어렵다고 했다. 우리가 맡은 일은 복합적이었다. 공동텃밭의 잡초를 제거하고, 홀로 사는 어르신 댁에 들러 창고 정리와 잔디 정리, 그리고 마을 골목의 낙엽과 쓰레기를 치우는 일이었다.

처음엔 이게 귀농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몇 시간만에 생각이 바뀌었다. 이 마을의 구조, 하루의 흐름, 주민 간의 거리감, 마을회관이라는 공간의 역할 등은 몸으로 부딪히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정보였다. 거기서 일하며 듣는 어르신들의 이야기는 그 어떤 책보다 생생했다. 그 중 한 분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귀농도 좋지만, 우리처럼 오래 산 사람들한테 인사 잘하고, 마음 열고 오면 다 같이 도와줄 거야."

말은 간단하지만 그 의미는 깊었다. 도시에서야 돈과 거래가 중심이지만, 시골에서는 신뢰와 관계가 우선이라는 걸 실감한 순간이었다.

봉사를 하며 생긴 변화

봉사활동은 생각보다 많은 걸 바꿔줬다. 특히 다음의 세 가지 변화는 내 귀농 계획의 방향까지 바꿔놓았다.

 

1. '막연함'이 '구체적 감각'으로 바뀌었다 마을의 크기, 이동 거리, 일의 강도, 사람의 분위기 등을 실제로 체감했다. 농촌에서 하루 종일 몸을 움직이는 게 어떤 느낌인지, 해가 지면 정말 할 일이 없어지는지, 이웃과 어떤 거리감을 유지하는지 모두 몸으로 배웠다. '살 수 있을까?'가 아닌, '이렇게 하면 살 수도 있겠구나'로 전환되었다.

2. 마을 사람들과 관계가 생겼다 단순한 방문자가 아니라, 함께 일한 사람으로 기억되었다. 몇 달 후에 다시 연락을 드렸을 때, 그 어르신들이 내 이름을 기억해주셨다. 그 관계가 농지 정보, 빈집 정보, 향후 공동체 활동 등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다. 인맥이 아니라 진짜 관계가 생긴 것이다.

3. 마음을 다스리는 훈련이 되었다 시골의 리듬에 맞춰 일하고 쉬며, 도시에서 잊고 있던 '느림'을 되찾았다. 오전 6시에 일어나 해가 질 때까지 일하고, 저녁엔 일찍 잠자리에 드는 생활이 생각보다 자연스러웠다. 스마트폰 없이도 하루가 충분히 풍요로울 수 있다는 걸 경험했다.

 

그 뒤로도 나는 내가 귀농을 하기전까지 계절마다 1~2회는 농촌 봉사에 참여 할려고 하고 있다. 봄에는 모종심기, 여름에는 잡초 제거, 가을에는 수확 돕기까지. 같은 마을을 계속 방문하다 보니 이제는 거의 준주민 같은 느낌이다. 작물을 재배하지 않아도, 땅을 소유하지 않아도, 시골과 관계 맺는 법을 배우고 싶은 이들에게 이보다 더 좋은 시작은 없다고 생각한다.

예비 귀농인을 위한 현실 팁

  • 신청 전 체크리스트
    • 보험 여부: 일부 활동은 자원봉사 보험이 적용되지 않음
    • 숙소 제공 여부: 1박 이상의 활동은 숙소 확인 필수
    • 장비 준비: 장갑, 장화, 긴팔 옷 등은 대부분 개인 준비
  • 활동 중 기억할 점
    • 주민과의 인사 중요 (처음이자 가장 중요한 관계 형성)
    • 말보다 행동 (묵묵히 일하는 것이 신뢰로 이어짐)
    • 사진, 글 기록 필수 (귀농 블로그 콘텐츠로도 활용 가능)
  • 봉사 후 관계 유지 
    • 가능하다면 같은 마을을 지속적으로 방문하자
    • 일회성 보다는 지속적인 관계유지
  •  

‘작은 행동’이 진짜 출발이었다

나는 지금도 귀농 준비 중이다. 여전히 농지를 계약하지 않았고, 상주 계획도 몇 달 뒤다. 하지만 마음만은 훨씬 더 가까워졌다. 왜냐하면 나는 ‘행동’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봉사는 대단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가장 실제적인 귀농 훈련이기도 하다. 농촌을 돕는다는 명분 속에서, 나는 귀농 이후의 삶을 연습하고 있었다. 어떤 시간표로 움직이고, 어떤 방식으로 사람을 대하고, 어떤 마음으로 땅과 연결될 것인지.

만약 당신이 지금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느낀다면, 봉사부터 시작해보자. 몸을 움직이면 마음이 따라온다. 관계가 따라오고, 확신이 조금씩 생긴다. 그렇게 ‘진짜 귀농’은, 작고 소박한 봉사에서 시작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