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과 귀촌

[청년 귀농 실천 가이드 #56] 농업 기술보다 더 중요한 것 – ‘기본 생활 기술’ 익히기

윤복E 2025. 7. 15. 09:13

농업 기술보다 더 중요한 것 ‘기본 생활 기술’ 익히기

농업 기술보다 더 중요한 것 – ‘기본 생활 기술’ 익히기

시골살이에 필요한 건 농업 기술뿐일 줄 알았다.
처음엔 귀농 관련 책도 열심히 보고, 작물 재배 방법도 공부하며 “이젠 준비가 좀 된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시골에서 한 달을 살아보니, 농사보다 더 시급하게 느껴진 건 기본 생활 기술이었다.

내가 말하는 '기본 생활 기술'은, 농업 기술 이전의 것들이다. 물 길어오기, 수도관 잠그기, 집 주변 땅 정리하기, 연장 사용법 등등. 도시에서야 전화를 걸면 기사님이 해결해주던 일들이, 시골에선 결국 '내가' 해야 하는 일이 되더라.

도시에서는 전문 업체가 처리해주던 일들이 시골에서는 일상의 일부가 된다. 이는 불편함이 아니라 자립의 과정이며, 진짜 시골 생활의 핵심이다.

 

 

수도꼭지 하나 못 고쳐 당황했던 날

완주에서 체험하던 중, 임시 숙소에서 욕실 수도꼭지가 갑자기 덜컥 빠졌다. '어? 이거 어떻게 하지?' 멍해진 나는 처음엔 그냥 수건으로 감싸 두고 잤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 물이 새고 바닥이 젖기 시작했다.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자 마을 어르신 한 분이 오셔서 "이거 그냥 몽키스패너로 조이면 돼" 하며 금세 해결해주셨다. 그분은 나에게 '몽키스패너'와 '렌치'의 차이부터, 고무패킹 하나로 수압까지 조절하는 법까지 차근히 알려주셨다.

그날 이후 나는 작은 공구 상자를 하나 마련했다. 전동 드릴, 줄자, 절연테이프, 스패너… 이름도 처음 들어보던 도구들이 내 삶의 필수품이 되어갔다.

이런 경험을 통해 깨달았다. 시골에서는 '스스로 해결하는 능력'이 생존의 기본이라는 것을. 그리고 이런 능력은 하루아침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꾸준한 경험과 학습을 통해 쌓아가는 것이라는 점을 말이다.

 

 

전기, 수도, 난방… 내가 직접 배워야 할 것들

① 전기 문제
시골집은 전기 배선이 노후된 곳도 많고, 차단기가 자주 내려간다.
한 번은 비 오는 날 갑자기 전기가 나가 어둠 속에서 혼자 당황했던 적이 있다.
알고 보니, 외부 전선이 낙엽과 함께 물에 젖어 누전이 발생한 것이었다.
그때 이후, 간단한 누전 차단기 리셋법과 전기 코드 정비는 기본으로 익혔다.

② 수도와 하수
수도 배관이 얼어붙거나, 고무 패킹이 닳아 물이 뚝뚝 새는 일도 있었다.
농사에 쓰는 물도 관리해야 하다 보니, 펌프 작동법도 배우게 됐다.
하수구가 막혔을 땐 ‘도시라면 당연히 기사님 부를 일’이었지만, 시골에선 주변 분이 알려주는 방법을 직접 따라 했다.
이때 느꼈다. “이건 귀농인이 먼저 배워야 할 생존 기술이구나.”

③ 난방과 화목보일러
겨울엔 화목보일러를 쓰는 집도 많다.
장작을 고르게 쪼개는 법, 불씨 유지하는 법, 연통 청소까지 직접 해보니
이 모든 게 도시 생활에선 상상도 못 하던 일이었다.
하지만 이게 익숙해지니, ‘내가 집을 돌보고 있다’는 이상한 뿌듯함도 생겼다.

 

 

집 밖에서도 기본 기술은 필요하다

시골은 집만 챙기면 되는 게 아니었다.
밭의 울타리도 내가 직접 쳐야 하고, 뒷산에서 멧돼지가 내려왔다는 말에 야간 감시등을 설치해야 했던 적도 있다.

마을 공동 작업에 참여할 때도 필요한 건 전문 농사 지식보다
삽질, 고무망 묶기, 자재 운반 같은 아주 기본적인 노동 기술이었다.

어르신들은 말한다.
“농사보다 중요한 건 손발 잘 놀리는 거다.”
그 말의 의미를 요즘 점점 더 실감하고 있다.

 

 

왜 이걸 ‘기본 생활 기술’이라고 부르는가

귀농을 준비할 때, 사람들은 ‘어떤 작물이 돈이 될까’, ‘농지원부는 어떻게 써야 하나’ 같은 질문부터 하곤 한다. 나 역시 그랬다.
하지만 실제로 시골에서 ‘살아가는 것’을 경험해보니, 그보다 앞선 질문은 이거였다.

“당장 전기 안 들어올 때,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수도 안 나올 때, 누구를 불러야 하지?”
“장작을 어떻게 쪼개야 잘 마를까?”

이건 기술이라기보다 생존이다.
그리고 바로 이 부분이 ‘귀농을 현실적으로 지속할 수 있는지’의 여부를 결정짓는다.

 

 

예비 귀농인을 위한 ‘기본 기술’ 준비 팁

① 유튜브를 활용한 기초 학습
'전원주택 관리', '화목보일러 설치', '간단한 전기 수리' 같은 키워드로 검색하면 정말 훌륭한 채널이 많다.
나는 ‘시골아재TV’와 ‘전원생활백서’ 같은 채널에서 정말 많은 걸 배웠다.

② 시골 체험 프로그램에선 집안일까지 적극 참여
단순히 밭일만 보지 말고, 수리나 청소, 정비에 동참해보자.
그게 훨씬 실생활에 가깝다.

③ 공구함 구성해보기
미리 준비해두면 안심되는 도구들이 있다.
– 몽키스패너
– 전동드릴
– 절연테이프
– 줄자
– 실리콘건
– 고무장갑

④ 주변 어르신께 배워보기
기계보다 더 믿음직한 건 경험자다.
‘이거 어떻게 하세요?’라는 질문 하나면, 고수의 노하우가 당신 손끝에 전달된다.

 

 

농업 이전에 ‘살아갈 힘’을 기르는 것

귀농은 '농사를 짓는 일'이기도 하지만, 더 본질적으로는 '시골에서 살아가는 일'이다. 그리고 그 삶은 예상보다 훨씬 '기술'을 많이 필요로 한다. 그 기술은 학위도 자격증도 필요 없다. 단지 내 손으로, 내 삶을 돌보는 능력. 바로 '기본 생활 기술'이다.

나는 아직도 매번 서툴다. 못 하나 제대로 박는 데도 10분이 걸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 10분이 쌓여 지금의 '귀농 준비된 나'를 만들고 있다고 믿는다.

기본 생활 기술을 익히는 것은 단순히 문제 해결 능력을 기르는 것이 아니다. 시골 생활에 대한 자신감을 키우고, 진정한 자립의 기반을 마련하는 과정이다. 이런 준비가 되어있을 때 비로소 농업 기술 습득에도 집중할 수 있고, 성공적인 귀농을 이룰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