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과 귀촌

[청년 귀농 실천 가이드 #52] 처음엔 낯설었지만, 이제는 마을의 한 사람으로

윤복E 2025. 7. 14. 06:51

귀농 준비 중 마을과 함께한 작지만 큰 첫걸음 -  외지인에서 마을 사람이 되기까지의 여정

 

처음 이 마을에 왔을 때 나는 말 그대로 ‘외지인’이었다. 얼굴도 낯설고, 말투도 어색하고, 심지어 복장도 마을 사람들과는 달랐다. 농사일을 시작한 것도 아니고, 땅을 산 것도 아닌, 귀농을 ‘준비 중’인 청년이란 사실이 나를 더 애매한 위치에 놓이게 했다. 하지만 지난 몇 주, 마을과 함께한 작고 소박한 경험들이 쌓이며 나는 조금씩 ‘한 사람’으로 스며들어가고 있었다.

마을잔치에서 시작된 첫 교류

그날은 정말 우연이었다. 마을회관 앞에 걸린 현수막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마을 봄맞이 잔치 – 국수 나눔 & 플리마켓”이라는 글씨. 용기를 내어 친구와 함께 참여했고, 처음엔 어색하게 둘러만 보다가 자연스레 국수 한 그릇을 받았다. 국수 맛은 물론이고, 나눠주던 어르신의 미소가 잊히지 않았다. “어디서 왔어요? 귀농해요?”라며 말을 걸어주셨고, 처음으로 ‘환영받는다’는 감정을 느꼈다.

그날, 나는 아무것도 팔지도 않았고 눈에 띄는 행동도 하지 않았지만, 많은 사람과 눈을 마주쳤고, “언제까지 있을 거예요?”, “어디서 묵고 있어요?” 같은 따뜻한 질문들을 받았다. 마을은 단지 ‘사는 곳’이 아니라, ‘함께 존재를 나누는 곳’이라는 걸 처음 실감했다.

마을잔치의 분위기는 도시의 어떤 축제와도 달랐다. 화려한 무대나 상업적인 부스는 없었지만, 사람들 사이에 흐르는 따뜻함이 있었다. 할머니들이 직접 만든 김치전을 나눠주고, 아이들이 뛰어놀며, 청년들이 어르신들과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런 광경을 보며 '진짜 공동체'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작지만 큰 참여 – 마을 청소에 나선 날

그 다음 주, 마을 청소 날이 있다는 걸 들었다. ‘귀농 준비생’으로서 뭔가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마음에 아침 일찍 나갔다. 평소라면 인사조차 나누기 어려웠을 어르신들과 빗자루를 들고 마을 골목을 쓸었다. 함께 땀 흘리다 보니, 자연스레 말문이 열렸다. “젊은 사람이 부지런하네!”, “뭐 하다 여기까지 왔어요?”라며 웃으며 물어오셨고, 나는 있는 그대로의 이야기를 들려드렸다.

청소가 끝나고 마을회관에서 마신 식혜 한 잔. 그 단맛 속에 마을의 환대가 녹아 있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오늘, 이 마을의 일부였다.’

 

마을 청소에 참여하면서 깨달은 것은 '함께 한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였다. 각자의 집 앞만 쓸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마을 전체를 우리 모두의 공간으로 여기며 함께 가꾸어나가는 것.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이웃과 대화하고, 서로를 알아가게 되는 것. 이것이 바로 시골 공동체의 힘이었다.

도움을 주고받는 ‘마을의 시간’

도시에서는 누군가의 부탁을 받으면 ‘내 시간이 방해받는다’는 느낌이 먼저 들었는데, 이곳에서는 반대였다. “저기 무거운 짐 좀 들어줘요.”라는 이웃의 말에 짐을 들고 따라갔다가, 그날 저녁 반찬으로 된장국 한 그릇을 받았다. 도움은 거래가 아니라 ‘순환’이었다. 어느 날은 내가 부탁하고, 어느 날은 내가 손을 내민다. 그렇게 ‘우리’가 되는 것. 그것이 바로 시골 생활의 리듬이었다.

 

시골에서 경험하는 이런 상호부조의 문화는 단순히 물질적 교환을 넘어서는 의미가 있다. 옆집 할머니가 아픈 다리 때문에 힘들어하실 때 장보기를 도와드리면, 며칠 후 텃밭에서 기른 싱싱한 채소를 받게 된다. 이런 과정에서 서로의 안부를 묻고, 일상을 나누며, 진정한 이웃이 되어간다.

관계는 시간을 담는 그릇

마을과 친해진다는 건 하루아침에 되는 일이 아니었다. 인사를 여러 번 건네야 얼굴을 기억하고, 함께 일을 몇 번 해야 신뢰가 생긴다. 하지만 그 과정은 결코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사람답게’ 살아가는 일처럼 느껴졌다. 도시에서는 잊고 살았던 이름, 인사, 식사, 수고했다는 말. 그 모든 것이 시골에선 당연한 일상이자 관계의 근육이었다.

 

시골에서의 관계 형성은 마치 나무가 자라는 것과 비슷하다. 처음에는 작은 새싹에서 시작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뿌리가 깊어지고 가지가 뻗어나간다. 급하게 성장하려 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시간의 흐름에 맡기는 것이 중요하다.

이제 나는 마을의 한 사람으로

귀농이란 단어는 결국 ‘어디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결정이다. 나는 요즘, 농지보다 먼저 마을을 고르고 있다. 땅이 아니라 사람이 먼저라는 걸, 이 짧은 시골 체험이 가르쳐줬기 때문이다. 아직 주민등록을 옮긴 것도, 집을 지은 것도 아니지만, 나는 지금 이 마을에서 ‘한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진짜 정착의 시작이라고 믿는다.

 

마을의 젊은 인구 감소와 고령화는 현실적인 문제다. 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가능성도 있다. 젊은 귀농인들이 가져오는 새로운 아이디어와 에너지, 그리고 어르신들의 오랜 경험과 지혜가 만나면 더 활기찬 마을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 마을에서 농사를 짓고, 이웃과 어울리며,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삶을 꿈꾸고 있다. 그리고 언젠가는 나 역시 새로운 귀농인을 따뜻하게 맞이하는 마을 사람이 되고 싶다. 그것이 바로 이 아름다운 공동체를 지속시키는 방법이라고 믿는다.

시골에서의 삶은 쉽지 않다. 경제적 어려움도 있고, 편의시설의 부족함도 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상쇄할 만큼 큰 가치가 있다. 진정한 공동체, 자연과의 조화, 느린 삶의 여유,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다운 삶. 이런 것들이 나를 이 마을에 머물게 하는 이유다.

마을의 일원이 되어가는 과정은 계속되고 있다. 매일 새로운 경험을 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새로운 것을 배우고 있다. 이 모든 경험이 나를 더 성숙한 사람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그리고 언젠가는 이 마을에서 완전한 정착민이 되어 후배 귀농인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

 

결국 귀농은 단순한 이주가 아니라 삶의 패러다임 전환이라고 다시 한번 기억하였다.

 

이제는 마을의 한 사람으로

그리고 그 변화의 중심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다. 마을 사람들과의 관계, 그것이 바로 성공적인 귀농의 열쇠라는 것을 이번 경험을 통해 확실히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