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과 귀촌

[청년 귀농 실천 가이드 #53] 시골의 일은 다 같이 한다 - 협동과 품앗이

윤복E 2025. 7. 14. 12:27

귀농을 준비하면서 처음엔 모든 걸 스스로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땅을 알아보고, 농사를 배우고, 수익 모델까지 만들며 나 혼자 부지런하면 뭐든 가능할 거라고 여겼죠. 하지만 시골에서의 한 달 체험이 끝나갈 무렵, 저는 완전히 다른 진실을 마주하게 됩니다.

바로, 시골의 일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 하는 것이라는 진실입니다.
시골의 노동은 ‘개인’이 아닌 ‘공동체’의 구조 안에서 움직이고 있었고,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품앗이’였습니다.

협동과 품앗이

 

품앗이라는 이름의 일상적인 협동

도시에 살 때 ‘품앗이’라는 단어는 어릴 적 교과서에서나 들어본 단어였습니다.
하지만 시골에서는 이 단어가 지금도 아주 실제적인 노동 방식으로 살아 있습니다.

모종을 옮기거나, 고추 지지대를 세우거나, 수확한 감자를 트럭에 싣는 일까지.
이 모든 일이 품앗이로 이루어집니다. 마치 누가 지시하지 않아도 마을 전체가 자연스럽게 일을 분담하고 협력하는 구조입니다.

예를 들어, 내가 다음 주 월요일에 모종을 심는다고 하면, 마을의 몇몇 분들이 “몇 시에 시작해?”라고 물어오십니다. 그리고는 아무 대가도 없이 농기구를 들고 함께 밭으로 나와 주시죠. 그러고 나면 그 주 주말엔 또 그분 밭에서 모종 심기를 도와드리는 식입니다.

이 교류는 단순히 일손을 돕는 차원을 넘어서, 서로의 삶을 연결하고 지지하는 공동체 문화였습니다.

 

 

내가 처음 참여한 품앗이 – 감자 수확의 날

완주에서 한 달 살이 중, 처음 품앗이에 참여했던 날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새벽 6시에 마을회관 앞에 모여 감자밭으로 함께 이동했습니다. 그날의 작업은 한 마을 어르신의 감자 수확이었고, 이웃 분들이 모두 모여 손과 발이 되어드렸습니다.

초반엔 ‘내 일도 아닌데 왜 도와줄까?’라는 도시식 사고가 떠올랐지만, 막상 일을 시작하고, 점심때 된장찌개를 함께 나누고, 오후엔 수확한 감자를 나눠 가지는 순간 그 물음은 사라졌습니다.

이곳에서는 ‘당신의 일이 곧 우리의 일’이라는 인식이 아주 자연스럽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곧 내가 도움받을 자격을 얻는 방식이기도 하다는 걸 알게 됐죠.

 

품앗이 문화, 누군가에게는 낯설고 부담스러울 수 있다

물론, 저처럼 도시에서 나고 자란 사람에게는 이 문화가 낯설고 어색할 수 있습니다.
‘내가 도움을 받을 자격이 있나?’, ‘혹시 폐가 되진 않을까?’ 걱정도 생깁니다.
하지만 시골에서의 협동은 전문성보다 ‘마음’과 ‘참여’에 더 가치를 둡니다.

손에 익지 않은 호미질도, 느린 작업 속도도 괜찮습니다. 중요한 건, 그 자리에 있다는 것, 그리고 함께하려는 마음입니다.

제가 처음 참여한 날도, 어르신들은 제 서툰 동작을 웃으며 받아주셨고, “괜찮아, 첨엔 다 그래”라며 등을 두드려 주셨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그분 밭일이 생겼을 때 제가 또 달려가 손을 보탰습니다. 그렇게 서로의 존재가 일상이 되었고, 신뢰는 쌓여갔습니다.

 

시골살이에서 협동이 중요한 이유

도시에서는 돈을 주고 서비스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많습니다.
이삿짐도, 청소도, 인터넷 설치도, 손만 까딱하면 전문가가 와서 해결해주죠.
하지만 시골은 그렇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시골집의 대문이 고장 나거나, 갑자기 배수구가 막히면
누군가에게 부탁을 해야 하거나, 직접 손을 봐야 합니다.
이때 이웃과의 관계는 단순한 친목이 아니라 생존의 기반이 됩니다.

그래서 시골에서는 ‘잘 살아가기 위해 관계를 만든다’기보다는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는 표현이 더 적절합니다.
품앗이와 협동은 그 핵심에 있는 구조입니다.

 

예비 귀농인을 위한 ‘품앗이’ 입문 팁

예비 귀농인이라면 이런 협동의 문화에 처음부터 적응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제가 경험한 바를 토대로 몇 가지 현실적인 팁을 드립니다.

  1. 마을 행사부터 참여해보세요
    • 마을 청소, 공공시설 수리 등에서 자원봉사를 하며 자연스럽게 관계가 생깁니다.
  2. ‘일손 도와드릴게요’라는 말은 큰 신뢰를 만듭니다
    • 농번기에 이 말 한마디면 마음의 문이 열립니다.
  3. 도움을 받은 후엔 반드시 감사의 표현을 하세요
    • 음료 한 병, 감자 한 봉지라도 성의는 성실함으로 통합니다.
  4. 본인의 일정도 조정 가능해야 합니다
    • 시골의 일은 날씨와 계절을 따르기에 유연한 일정 관리가 필요합니다.
  5. 같이 식사하고 쉬는 시간도 중요하게 여기세요
    • 품앗이는 단순한 노동 교환이 아닌, 관계의 시간입니다.

 

함께하는 것이 곧 자립입니다

처음엔 ‘협동’이라는 말이 ‘의존’처럼 느껴졌습니다.
나는 스스로 일어서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 귀농을 결심했는데,
왜 자꾸 다른 사람에게 기대야 하는 걸까, 혼란스러웠죠.

하지만 이제는 압니다.
시골에서의 협동은 내가 쓰러지지 않기 위한 보호망이자,
내가 남을 도울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순환의 힘이라는 걸요.

혼자 해내는 자립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자립.
그게 바로, 진짜 시골에서의 살아있는 자립입니다.

 

 

품앗이의 첫걸음은 관심과 참여입니다

예비 귀농인으로서, 귀농을 준비할 때 작물 재배법이나 행정 절차만큼이나
‘품앗이’와 ‘협동의 문화’를 이해하고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시골은 ‘혼자 일해 성공하는 곳’이 아니라,
‘함께 살아내는 곳’입니다.

그리고 그 시작은 아주 작고 단순한 행동,
“무슨 일 도와드릴까요?” 라는 한마디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