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과 귀촌

[청년 귀농 실천 가이드 #55] “시골 생활, 사계절은 다르게 흐른다 "

윤복E 2025. 7. 15. 01:54

– 귀농 준비 중 마주한 계절의 리듬

농촌에서 발견한 계절의 진짜 의미

귀농을 준비하기 전까지만 해도, 계절이란 단순히 '날씨가 바뀌는 시기'라고 생각했습니다. 봄이면 따뜻해지고, 여름엔 덥고, 가을은 선선하고, 겨울엔 추워진다는 정도로 말입니다. 그런데 시골에서의 한 달 살이를 경험하며 깨달았습니다. 이곳에서 '계절'은 단순한 기후의 변화가 아니라, 바로 '일과 삶의 리듬' 자체였습니다.

도시에서 살 때는 에어컨과 난방으로 계절을 차단하고 살았지만, 농촌에서는 계절과 함께 숨쉬며 살아야 합니다. 이는 불편함이 아니라,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삶의 방식이었습니다.

농사에는 달력이 따로 있다

도시에서 살 때는 1월 1일이 새해의 시작이었지만, 시골에서는 2월 말부터 3월 초, 비닐하우스를 덮고 모종을 심을 준비를 할 때 비로소 '새해가 시작되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언제부터 농사를 시작하나?' 하는 질문은, 곧 '언제부터 이 계절과 함께 움직일 준비가 되었나?'라는 물음으로 바뀌었습니다. 시골의 시간은 절기와 함께 흐르고, 매주가 다르게 일합니다.

농촌의 시간표는 자연이 정해줍니다.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리듬입니다. 이런 생활을 하다 보면 도시에서 느끼지 못했던 자연의 미묘한 변화들을 온몸으로 감지하게 됩니다.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사람들의 움직임

4월 초, 마을의 고추 모종을 옮겨 심는 날에는 모든 집에서 동시에 일이 시작됩니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새벽부터 온 마을이 분주해집니다. 이런 모습을 보며 농촌 공동체의 특별함을 느꼈습니다.

6월이 되면 다들 새벽같이 나가 논에 들어가고, 오후에는 무더위를 피해 긴 낮잠을 잡니다. 한낮의 일손이 뜸해지는 대신, 해가 길어지는 만큼 해 질 무렵에는 밭일이 다시 시작됩니다. 도시에서 '야근'이라 부르던 것이 여기서는 '늦저녁 수확'입니다.

어느새 아침 6시에 일어나 밭 주변을 산책하고, 해질 무렵에는 마을 사람들과 함께 식사를 하며 하루를 정리하는 루틴을 따르게 되었습니다. 도시에서의 일상과는 완전히 다른 리듬이지만, 이 리듬이 몸에 익으니 이상하게 마음이 더 편안해졌습니다.

 

시골 생활 사계절

사계절 농사의 풍경과 특징

봄: 시작과 희망의 계절 (3~5월)

봄은 시작의 계절이었습니다. 밭을 갈고, 모종을 심고, 비닐을 덮고, 일정을 짜는 시간. 모든 가능성이 움트는 설렘이 있었습니다. 겨울 동안 얼어있던 땅이 녹으면서 생명력이 솟아나는 것을 직접 목격할 수 있습니다.

봄철 농사 준비는 일년 농사의 성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시기입니다. 종자 선택부터 토양 관리, 파종 시기 결정까지 모든 것이 섬세하게 계획되어야 합니다.

여름: 정면 돌파의 계절 (6~8월)

여름은 정면 돌파의 계절이었습니다. 풀은 무섭게 자라고, 해는 무자비하게 내리쬡니다. 벌레, 병해, 갑작스런 비. 하루하루가 긴장의 연속이었지만, 땀 흘린 만큼 자라나는 작물을 보는 재미도 컸습니다.

여름철 농사는 체력적으로 가장 힘든 시기입니다. 하지만 이 시기를 잘 넘기면 가을 수확에 대한 기대감이 커집니다. 새벽 일찍 시작해서 낮 시간대는 휴식을 취하고, 저녁 시간대에 다시 일하는 패턴이 자연스럽게 형성됩니다.

가을: 결실과 판단의 계절 (9~11월)

가을은 결실과 판단의 계절이었습니다. 어떤 작물은 예상보다 잘 자랐고, 어떤 것은 실패했습니다. 수확의 기쁨과 함께, 다음 해를 위한 반성도 함께 찾아왔습니다.

가을 수확철은 농부들에게 가장 보람찬 시기입니다. 한 해 동안 정성껏 가꾼 작물들을 거둬들이면서 자연스럽게 내년 농사에 대한 계획도 세우게 됩니다. 농산물 판매와 유통에 대한 현실적인 고민도 이 시기에 가장 활발해집니다.

겨울: 준비와 성찰의 계절 (12~2월)

겨울은 준비의 계절이었습니다. 땅은 얼고, 바람은 매서워졌지만, 마음은 한결 여유로워졌습니다. 마을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고, 내년을 위한 계획을 세우며 진짜 '농사력'을 쌓아가는 시간이었습니다.

겨울철은 농기구 점검과 정비, 내년 작부 계획 수립, 농업 교육 참여 등 보이지 않는 중요한 일들을 하는 시기입니다. 또한 농촌 공동체의 유대감을 다지는 각종 모임과 행사들도 주로 겨울에 집중됩니다.

 

귀농 준비, 사계절을 겪어봐야 하는 이유

한 달 살이 체험을 두 번으로 나눠 한 것은 정말 현명한 결정이었습니다. 봄철의 시골과 가을철의 시골은 정말 다른 세상이었기 때문입니다. 날씨만 다른 게 아니라, 마을 분위기, 사람들의 리듬, 행사, 심지어 식탁 위 반찬까지 다 달랐습니다.

도시에서 농사 짓는 상상을 할 때는, 항상 '잘 자란 작물을 수확하는 순간'만 떠올렸는데, 실제로는 대부분의 시간이 '기다림'과 '관리', 그리고 '다시 심기'였습니다. 이런 것들은 몸으로 겪어보지 않으면 절대 와닿지 않습니다.

각 계절마다 농촌의 모습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에, 최소 1년은 농촌에서 생활해봐야 진짜 농촌 생활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비 귀농인을 위한 계절별 준비 전략

봄철 준비 사항 (3~5월)

농번기 시작 전, 체험 농장이나 현장 실습에 참여해보세요. 모종 작업, 밭 정리 등 진짜 농사의 전초전입니다. 이 시기에는 농업기술센터에서 운영하는 신규 농업인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도 좋습니다.

여름철 준비 사항 (6~8월)

가장 힘든 계절이지만, 농사의 핵심을 배울 수 있는 시기입니다. 함께 땀 흘리는 경험이 공동체와의 유대도 쌓아줍니다. 이 시기에는 실제 농사 경험보다는 관찰과 학습에 중점을 두는 것이 좋습니다.

가을철 준비 사항 (9~11월)

수확과 유통 과정을 배우기에 가장 좋은 시기입니다. 로컬푸드 직매장이나 판로 개척에 대한 현실적 감각도 이때 잡힙니다. 농산물 가격 형성과 유통 구조에 대한 이해도 이 시기에 깊어집니다.

겨울철 준비 사항 (12~2월)

교육과 전략 수립의 계절입니다. 농업기술센터나 청년농부 모임, 온라인 강의를 활용해 이론과 계획을 다져두세요. 이 시기에는 귀농 관련 서적 읽기와 선배 농부들과의 네트워킹에 집중하는 것이 좋습니다.

 

농촌 생활의 현실적 조언

농촌 생활을 시작하기 전에 알아야 할 것들이 많습니다. 단순히 농사 기술뿐만 아니라 농촌 사회의 문화와 관습, 이웃과의 관계 맺기, 지역 행정 시스템 등 도시와는 다른 생활 방식을 이해해야 합니다.

특히 농촌에서는 공동체 의식이 매우 중요합니다. 마을 행사 참여, 공동 작업 참여, 이웃과의 품앗이 등은 단순한 친목 활동이 아니라 농촌 생활의 필수 요소입니다.

사계절을 따라가면, 마음이 준비된다

귀농을 준비하며, 땅을 배우는 것보다 먼저 '시간의 흐름'을 배워야 했습니다. 시골의 삶은 한 해, 사계절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그 안에 모든 농사와 생활이 녹아 있습니다.

도시의 시간은 직선이라면, 시골의 시간은 원형입니다. 같은 자리에 다시 돌아오지만, 매번 조금 더 익은 모습으로 돌아옵니다. 이런 순환의 리듬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성공적인 귀농의 첫걸음입니다.

농촌에서의 삶은 자연과 함께 하는 삶입니다. 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끼며, 자연의 리듬에 맞춰 살아가는 것이 농촌 생활의 핵심입니다. 이는 처음에는 어색하고 불편할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깊은 만족감을 주게 됩니다.

이제 나만의 농사 달력을 만들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아직 아무것도 수확해보지 않았지만, 계절의 흐름 속에서 조금씩 시골 사람이 되어가고 있음을 느낍니다. 귀농을 꿈꾸는 분들에게 이 경험이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