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3] “온라인 판매로 농산물을 판다고?”의 연장선상에서, 단순한 판매 채널을 넘어서 ‘사람과 연결되는 팔로’를 어떻게 준비해 나갈 수 있을지를 예비 귀농인의 시점에서 심화 탐색한 이야기입니다.
브랜드도 만들었고, 스마트팜도 공부했고, 콘텐츠도 차곡차곡 쌓이는 중이다.
그런데 문득, 이런 고민이 들었다. “내가 수확한 작물은 과연 어디로 갈까?”
귀농을 준비하면서 브랜딩이나 생산 방식에 대해서는 많이 배우고 구체화했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팔로(販路)’에 대해서는 막연했다. 이건 단순히 농산물을 파는 방법이 아니라, 내가 만든 브랜드가 세상과 연결되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유통 채널을 찾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연결될 방법’을 탐색하는 시간으로 이 단계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리고 이 여정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로컬(Local)’이었다.
“어디에 팔 수 있나요?”라는 질문의 허상
예비 귀농인 커뮤니티에서 가장 자주 나오는 질문 중 하나는 이거다. “직접 재배한 작물, 어디에 파나요?”
처음엔 나도 온라인 마켓,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쿠팡, 심지어 무신사 스토어까지 뒤져가며 판매 루트를 탐색했다. 그런데 아무리 정보를 정리해도 선뜻 그 안에 나를 집어넣을 수가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이루어지지 않은 농사는 아직 팔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유통보다 먼저 ‘연결’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단골을 모으고, 지역을 이해하고, 이야기로 신뢰를 얻어가는 것. 그게 유통의 출발점이라는 걸 어렴풋이 느끼게 됐다.
나는 지금, 사람을 위한 팔로를 준비한다
최근 나는 두 가지를 병행하고 있다.
하나는 로컬푸드 직매장을 중심으로 한 오프라인 탐색이고, 다른 하나는 온라인 플랫폼 분석이다.
1. 로컬푸드 직매장 – 가장 현실적인 첫 유통 창구
귀농 선배가 추천해준 지역 로컬푸드 직매장을 찾아가봤다. 경기도 고양시의 한 직매장은 출하 전날까지 수확된 상품만 받는다. 신선함이 생명이다. 또 생산자 등록부터 가격 책정, 판매 수수료 구조까지 모두 투명하게 공개되어 있다.
내가 직접 농사를 짓지는 않지만, 귀농체험 프로그램과 연결해 출하 과정을 참관하며 많은 것을 배웠다. 특히 농민과 매니저의 소통 방식, 라벨링과 QR코드 관리, 정산 방식은 향후 내 사업에도 적용할 수 있는 소중한 지식이 됐다.
여기서 중요한 발견이 있었다. 잘 팔리는 농산물들은 모두 '얼굴 있는 농부'의 작품이었다는 것이다. 단순히 품질이 좋은 게 아니라, 소비자들이 그 농부의 이야기를 알고 있었다. 매장 게시판에 붙은 '생산자 소개' 코너에서 그 흔적을 확인할 수 있었다.
2. 스마트스토어 vs 쿠팡 vs 오프라인
온라인은 매력적이다. 1인 브랜드도 가능하고, 지역 제약도 없다. 하지만 진입장벽이 낮은 만큼 경쟁은 치열하다. 특히 유통/배송/CS 시스템을 스스로 구축해야 한다는 점은 예비 귀농인에게는 진입장벽이 된다.
그래서 지금은 배송보다 ‘픽업’을 먼저 고려하고 있다. 지역 커뮤니티(맘카페, 아파트 단톡방 등) 중심의 사전 주문 + 현장 픽업 시스템은 신뢰와 유통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는 좋은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최근 한 지역 농원에서 '포도농원 팜파티'라는 이름으로 '농장 픽업데이'를 운영하는 것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다. 매주 토요일 오전, 일주일치 주문을 받아 농장에서 직접 픽업하는 방식이다. 고객은 신선한 채소를 받고, 농부는 농장 투어까지 제공하며 관계를 쌓아간다. 이런 방식이라면 배송비 부담도 없고, 무엇보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가능하다.
연결을 위한 준비 – 콘텐츠는 나의 전단지
내가 지금 운영 중인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은 아직 수익도 없고 홍보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특히 인스타그램 같은 경우에는 매주 채소가 자라는 모습을 기록하고, 브랜드 철학을 적고,
스마트팜 공부기를 남기는 건 온라인 전단지라고 생각한다.
누군가 내 작물을 검색했을 때, 단순히 '무농약 상추 2,000원'이 아니라 '흙길농장, 이런 생각을 가진 농부가 키운 채소'라는 이야기가 보이도록. 그게 결국 신뢰로 이어질 수 있다고 믿는다.
유통보다 관계, 판매보다 신뢰
귀농은 혼자 하는 일이 아니다. 내가 이 땅에 내려와 어떤 마음으로 농사를 짓는지, 지역 사회에 어떤 사람으로 다가가는지가 유통보다 더 먼저 준비돼야 할 일이다.
아직 수확할 작물이 없지만, 나는 사람을 만나고 있다. 지역 축제의 자원봉사자로, 마을 회관의 견학 신청자로, 로컬 직매장의 참관인으로. 그 연결이 쌓여갈수록, 내 농장의 팔로도 서서히 열릴 것이다.
나는 지금 물건을 팔 준비가 아니라, 신뢰를 쌓을 준비를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신뢰는 결국 가장 강력한 유통 채널이 될 것이다.
예비 귀농인을 위한 로컬 유통 탐색 팁
- 지역 직매장은 견학부터
- 실제로 가서 판매 방식, 소비자 동선, 관리 체계를 눈으로 보는 것이 가장 빠르다. 가능하다면 바쁜 시간대(오전 10시-12시)에 가서 실제 구매 패턴을 관찰해보자.
- 마을 행사와 연결하라
- 작은 플리마켓, 주민 장터, 축제는 잠재적 단골을 만나는 최고의 접점이다. 처음엔 판매보다는 '우리 농장을 소개하는' 관점에서 접근하는 게 좋다.
- 작은 픽업 판매를 시도하라
- 동네 커뮤니티에 작게 안내문을 내고 반응을 체크해보자. 10명만 호응해도 충분한 시작이다.
- 기록은 곧 신뢰다
- 판매하지 않아도, 어떻게 농사를 짓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블로그나 SNS로 남기자. 6개월 후의 나를 믿고 구매할 고객들이 있을 것이다.
나는 지금, 유통이 아니라 연결을 준비하고 있다
귀농의 수익은 단순한 농산물 판매가 아니다. 그것은 관계, 신뢰, 나의 이야기 위에서 피어나는 열매다.
나는 아직 작물을 팔지 못하지만, 오늘도 누군가에게 내가 어떤 농부가 되고 싶은지 이야기하고 있다.
그것이야말로, 가장 단단한 유통 준비라고 나는 믿는다.
어쩌면 진짜 질문은 "어디에 팔 것인가?"가 아니라 "누구와 연결될 것인가?"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답은 이미 내 안에 있다.
내가 키우고 싶은 작물을 좋아할 사람들, 내 이야기에 공감할 사람들,
그리고 나와 함께 더 나은 먹거리를 만들어갈 사람들이 바로 내 고객이다.
팔로는 찾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지금, 이 순간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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