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과 귀촌

[청년 귀농 실천 가이드 #59] "정착지 선정, 어디로 가야 할까? 지역을 결정하는 7가지 기준"

윤복E 2025. 7. 17. 07:31

귀농을 결심한 뒤, 가장 오래 붙잡고 고민했던 문제는 바로 ‘어디로 가야 할까’였다.

 

똑같은 고민....언제 끝날까?


솔직히 말하면 처음에는 어디든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서울만 벗어날 수 있다면, 회사에서 벗어나 조금이라도 조용한 곳에서 살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건 단순한 ‘이사’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내가 앞으로 살아갈 삶의 무대, 일터, 공간, 공동체를 선택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때부터는 정착지를 선택하는 기준을 하나씩 적어가며 고민을 시작했다. 이번 글에서는 나처럼 예비 귀농인으로서 정착지를 고민 중인 분들을 위해, 내가 실제로 정리했던 ‘7가지 기준’을 공유해보려 한다.

 

 

1. 기후와 자연환경 –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자연인가?

나는 더위보다 추위에 약하다. 겨울이 길고 눈이 많이 오는 지역은 나에게는 큰 도전이 된다. 실제로 강원도 쪽 귀농 사례를 살펴보던 중, ‘겨울엔 한 달 넘게 눈이 쌓여 있는 마을’이라는 문장을 보고 바로 접은 적이 있다.

작물도 마찬가지다. 어떤 작물을 짓고 싶은지에 따라 지역의 기후, 강수량, 일조량이 매우 중요하다. 나는 열무, 상추 같은 잎채소 중심의 소농부터 시작하려고 했기에, 상대적으로 사계절이 분명하고 습하지 않은 지역을 선호했다.

직접 가보지 않으면 잘 모르기 때문에, 몇몇 지역은 날 잡고 가서 공기, 습도, 햇빛 각도까지 느껴봤다. 이건 숫자로는 안 보이는 ‘몸의 감각’이 판단을 도와주는 부분이었다.

2. 거리와 접근성 – 도심과의 거리, 병원·마트는 얼마나 먼가?

시골이라 해도 세상과 완전히 단절되어 살 수는 없다. 특히 나는 부모님이 연로하시기 때문에 서울과 너무 멀리 떨어지는 건 부담이었다. 기차나 고속버스를 이용해도 반나절 내로 오갈 수 있는 곳이어야 했다.

또 하나, 응급 상황 시 병원까지 몇 분이 걸리는지도 중요했다. 내가 아플 수도 있지만, 함께 사는 가족이 위급할 수도 있지 않은가. 실제로 어떤 마을은 응급실이 있는 병원까지 1시간 넘게 걸려서, 좋은 인상에도 불구하고 보류하게 됐다.

인터넷 배송이나 대형마트 접근성도 체크했다. 생각보다 많은 시골 마을이 여전히 택배 사각지대에 있고, 생필품 구매가 쉽지 않은 경우가 있었다. 불편함이 일상이 되면 삶의 질도 영향을 받는다.

3. 인구 구조와 마을 분위기 – 외지인에 열린 곳인가?

나는 혼자서 새로운 환경에 들어가는 데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과 잘 어울릴 수 있을지가 굉장히 중요한 기준이었다. 귀농 선배들의 이야기를 많이 참고했고, 그 중 자주 들은 말이 “사람 좋은 마을로 가라”는 거였다.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귀농체험마을’이나 ‘귀농인 지원센터’를 활용해서 몇 개 지역을 실제 방문해봤는데, 생각보다 마을 분위기 차이가 컸다. 어떤 마을은 외지인에게 꽤 차갑고 보수적인 반응을 보였고, 어떤 곳은 “어디서 왔냐”고 먼저 말을 걸며 차를 내어주기도 했다.

이건 진짜 느낌이 중요하다. 데이터를 아무리 들여다봐도, ‘이곳에서 내가 마음 편히 숨 쉴 수 있을까?’라는 감각은 발로 뛰며 느껴야 알 수 있었다.

4. 주거 조건 – 집은 얼마나 구하기 쉬운가?

땅보다 집이 문제였다. 농지는 귀농 지원센터나 지자체 정보로 비교적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지만, 실제로 살아야 할 주택은 정보를 찾기 어렵고, 가격도 제각각이었다.

나는 창고나 빈집을 수리해서 쓰는 것도 고려했지만, 막상 직접 가보면 기본적인 단열이나 수도, 난방이 갖춰지지 않은 집이 많았다. 또 한 번은 30년 된 시골집을 소개받았는데, 너무 낡아서 수리비가 집값의 절반 이상이 나올 정도였다.

지금은 아예 ‘귀농인을 위한 임대주택’이 있는 지역을 우선 살피고 있다. 일정 기간 거주하면서 지역에 적응할 수 있고, 그 사이에 정착지를 더 구체화할 수 있어서다.

5. 농업 기반 – 농기구·컨설팅·인프라가 있는가?

농사를 지을 거라면, 결국 중요한 건 농업 기반이다. 나는 아직 농기계 하나도 없고, 농사 경험도 부족하다. 그렇기 때문에 기계 대여가 가능한 농업기계은행, 초보자 교육 프로그램, 로컬 농업기술센터가 잘 운영되는 지역을 찾아야 했다.

또한 농산물 유통이나 로컬푸드 직매장 같은 판매 경로가 있는지도 중요한 포인트였다. 단순히 땅만 있는 곳보다, 농업 시스템이 갖춰진 곳에서 시작하는 게 부담이 덜하다는 게 선배들의 조언이었다.

6. 인터넷 환경과 전기·수도 – 디지털은 귀농에도 중요하다

나는 블로그를 운영하고, 유튜브도 시도해볼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인터넷 환경도 무시할 수 없었다. 요즘은 도시보다 더 빠른 속도의 광랜이 들어오는 농촌도 있지만, 여전히 와이파이조차 불안정한 지역도 존재한다.

또한 전기 누전 문제, 상수도 여부, 하수 처리 방식 등도 체크해야 할 항목이었다. 내가 직접 보고 경험한 곳 중 한 군데는 여름철이면 자주 정전이 되는 곳도 있었고, 또 어떤 마을은 개인이 지하수 시설을 관리해야 했다. 이런 조건들은 실제로 살아보지 않으면 예측하기 어렵다.

7. 나와 맞는 리듬 – '이곳의 하루'에 내가 녹아들 수 있을까?

이건 가장 감성적인 기준이지만, 결과적으로 나에게는 가장 중요했다.
어느 마을에서는 하루 종일 바람이 잔잔하게 불었고, 들려오는 소리는 새소리와 개 짖는 소리뿐이었다. 또 어느 곳은 마을 중심에서 사람들이 수시로 오가며 활발하게 인사하고, 일이 끊이지 않았다.

조용함을 원했던 나는 전자에 더 끌렸다. 그냥 내가 그 공간에 섞여 있는 상상을 했을 때, 마음이 편한 곳. 내 하루 루틴을 그릴 수 있는 곳. 그런 감각이 드는 마을이 결국 내가 정착할 후보지가 되었다.

정착지 선정 어디로 가야 할까?

나의 정착지는 아직 ‘탐색 중’

지금 나는 2~3곳의 유력 후보지를 두고 최종 결정을 앞두고 있다. 어느 하나 쉽게 결정할 수 있는 건 아니고, 계속 가보고, 머물고, 지역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내 몸과 마음을 시험해보는 중이다.

생각할수록 선택하기가 이렇게 어려운건지 나도 몰랐다. 아직도 고민이고, 걱정이고....

그래서 난 계속 알아보고 공부하고 있다. 공부하고 탐색하다보면 선택을 해야할 순간에 아무 미련없이 선택을 할수 있을것이다.

 

귀농의 첫 시작은 ‘결심’이지만,
진짜 시작은 ‘정착지’에서 이루어진다.
어디에 뿌리내릴지 결정하는 이 과정은 생각보다 길고 복잡했지만, 오히려 이 시간이 있었기에 더 단단한 준비가 가능했다.

혹시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정착지를 고민하고 있다면,
꼭 ‘내 몸과 마음이 편안해질 수 있는 곳’을 기준으로 삼기를 바란다.
그건 지도에도, 인터넷에도 없고, 직접 느껴봐야만 알 수 있는 감각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