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과 귀촌

[청년 귀농 실천 가이드 #64] 귀농 후 나의 하루 상상도

윤복E 2025. 7. 18. 19:24

- 이곳에서 나는 이렇게 살고 싶다 -

 

귀농은 단지 도시를 떠나는 일이 아니다. 도시에서 익숙해진 모든 것을 스스로 재구성하는 일이다.

전편(#63)에서 B 마을을 답사하고 가능성을 봤다면, 이번에는 내가 그 마을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그려보려 한다.
아직은 상상이지만, 나는 이 상상이 현실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귀농 후 나의 하루 상상도

 

“아침은 느리게, 그러나 규칙 있게”

하루는 해 뜨는 소리로 시작된다. 알람 대신 새 소리, 닭 우는 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경운기 소리가 나를 깨운다. 일어나는 시간은 6시 반. 도시에서는 절대 불가능했던 시간이다.

일어나자마자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창문을 열어 바깥 공기를 마시는 것. 도시의 매캐한 먼지 대신, 이곳의 아침 공기는 말 그대로 '맑다'. 마당 옆 텃밭에 나가 땅을 만지고, 어제보다 자란 고추와 가지를 확인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텃밭에서 아침 물주기를 마치고 나면, 작은 수첩에 오늘의 계획을 적는다. 어떤 밭일을 할지, 어떤 영상을 촬영할지, 마을 일은 없는지 차근차근 정리한다. 도시에서는 스마트폰 메모장에 휙휙 적던 일들이, 이제는 손으로 쓰는 노트에 정성스럽게 기록된다.

 

 

“커피 한 잔, 그리고 마을 산책”

모닝커피는 여전히 나의 루틴이다.

하지만 이제는 아파트 베란다가 아니라 마당 의자에 앉아 커피를 마신다.

이웃집 할머니가 지나가며 인사한다.

"오늘도 일찍 일어나셨네요." "네, 해가 일찍 떠서요." 이런 짧은 인사가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그 길로 동네 한 바퀴를 걷는다. 마을 길은 언제나 조용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생기 있다.

누군가는 밭일을 시작하고, 누군가는 이장님댁 마당에서 농기구를 손질하고 있다.

산책길에서 만나는 마을 개들도 이제는 내가 누군지 안다.

처음엔 짖어대던 누렁이도 이제는 꼬리를 흔들며 반겨준다.

마을 끝자락 작은 개울에서 잠시 멈춰 서서, 물소리를 들으며 하루를 시작할 마음을 다진다.

 

“일은 농사만이 아니다”

오전 9시부터는 본격적인 일과가 시작된다.

나의 주요 수입은 도시 시절부터 해오던 온라인 콘텐츠 제작. 귀농 정보, 시골 생활 브이로그, 텃밭 가꾸기 기록을 영상으로 편집해 업로드한다. 수익은 많지 않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로 돈을 번다'는 게 중요하다.

작업실로 개조한 안방에서, 어제 촬영한 영상들을 편집한다. 고추가 자라는 타임랩스, 마을 할머니께 배우는 전통 음식 만들기, 계절별 텃밭 관리법 등. 구독자들이 남긴 댓글에 일일이 답글을 달면서, 도시에 있는 예비 귀농인들과 소통한다.

 

그리고 오후에는 마을에서 맡은 일도 한다. 이장님 부탁으로 마을 카페 블로그를 관리하거나, 농산물 직거래 웹사이트에 새로 딴 감자를 올리는 일도 한다. 혼자만을 위한 삶이 아니라, 마을과 함께하는 일상이 자연스레 이어진다.

요즘에는 마을 청년회에서 '농촌 체험 프로그램' 기획도 맡고 있다.

도시 가족들이 주말에 와서 농사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이다. 내가 가진 콘텐츠 제작 경험이 마을에도 도움이 되고, 나에게도 새로운 수입원이 되는 일석이조의 프로젝트다.

 

 

“저녁은 공동체와 함께”

저녁이 되면 가끔 마을회관으로 향한다.

매주 수요일은 마을 젊은 사람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작은 영화 상영회'를 연다.

내가 도시에서부터 가지고 있는 스크린은 낡았고 음향은 부족하지만, 함께 본다는 게 중요하다.

영화가 끝나면 둘러앉아 된장국 한 그릇 나누며 서로의 이야기를 듣는다.

오늘 밭에서 고라니가 작물을 망쳐놨다는 이야기, 누가 손주를 보러 간다는 소식, 누구네 집 고양이가 새끼를 낳았다는 소식. 이런 소소한 대화들이, 내가 원했던 공동체의 그림이다.

금요일 저녁에는 마을 청년들과 함께 '마을 라디오'를 진행한다.(함께할 마을 분들이 있으면 좋겠다.ㅎㅎ)

마을 방송국에서 한 시간 정도 생방송으로 음악을 틀고, 마을 소식을 전하고, 청취자들의 사연을 읽어주는 시간이다. 도시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경험이다.

 

 

“밤은 조용하지만, 외롭지 않다”

밤 10시. 하루를 마무리하며 별을 본다. 도시에서는 볼 수 없던 별무리. 혼자인 듯하지만, 결코 외롭지 않다. 낮에 만난 사람들, 밭에서 만난 생명들, 영상 속 구독자들의 응원까지. 모두가 내 일상 속에 스며들어 있다.

침대에 누워 하루를 정리하며 일기를 쓴다. 오늘 새로 배운 것들, 고마웠던 순간들, 내일 해야 할 일들을 차근차근 적어 내려간다. 도시에서는 너무 바빠서 놓쳤던 하루하루의 소중함을, 이곳에서는 놓치고 싶지 않다.

가끔은 늦은 밤까지 온라인 스터디에 참여하기도 한다. 전국의 귀농인들과 함께하는 농업 기술 강의나, 농촌 창업 아이디어 공유 세션 등. 물리적으로는 시골에 있지만, 디지털로는 전국의 뜻 맞는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다.

 

 

[이상 예비 귀농인의 한줄 상상이었습니다.]

내가 꿈꾸는 삶은 시골에만 있는 게 아니다.
그 삶을 상상하고 준비하는 지금, 그 순간부터 귀농은 이미 시작된 것이다.

 

 

이 상상은 아직 현실이 아니다.
하지만 상상이 구체적일수록, 현실이 될 가능성은 더 높아진다.
귀농은 ‘언젠가 할 일’이 아니라 ‘지금부터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다음 편에서는, 이 상상을 현실로 바꾸기 위해 내가 준비하고 있는 생활비, 수입 구조, 구체적인 월별 계획 등을 공유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