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귀농 실천 가이드 #72] “귀농하면 자연 치유된다?”
귀농과 정신건강: 자연 속에서도 외로울 수 있다
귀농을 결심할 때 많은 사람들이 '자연 속에서 힐링하겠다'는 기대를 품는다. 나 또한 그랬다. 도시의 번잡함과 스트레스를 내려놓고, 조용한 시골에서 평온한 일상을 누릴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귀농 준비를 하며 다양한 마을을 답사하고, 예비 귀농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시골 생활이 반드시 마음의 평화를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자연 속에서도 외로울 수 있다
시골의 조용함은 처음엔 반갑다. 하지만 그 고요가 '정적'이 되어 마음을 짓누르기도 한다. 이웃과의 거리, 익숙한 관계망의 단절, 반복되는 농사일의 단순성. 이런 요소들이 쌓이면 '생산적인 고립'이 아닌 '정서적 단절'로 이어지기도 한다.
"자연이 곁에 있는데 왜 외롭지?" 라는 질문이 들 때쯤, 우리는 귀농이 단순한 공간 이동이 아니라 '정체성의 전환'임을 깨닫게 된다.
실제로 농촌진흥청의 2023년 조사에 따르면, 농촌 거주자의 우울감 경험률이 도시 거주자보다 1.3배 높게 나타났다. 특히 귀농 초기 1-3년차 가구에서 적응 스트레스로 인한 정신건강 문제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개인의 의지나 성격 문제가 아니다. 환경 변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적응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도시에서 농촌으로의 이주는 언어, 문화, 생활 패턴의 전면적 변화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귀농 이후 겪는 감정들
귀농 후 1~2년 차 예비 귀농인 또는 초기 정착자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심리적 변화는 다음과 같다.
- ✅ 도시와의 단절감: 정보, 문화, 사람 등 모든 자극에서 멀어짐
- ✅ 정체성 혼란: “나는 이제 농부인가?”, “이게 잘 살고 있는 건가?”
- ✅ 관계 피로감: 적은 인구수로 인해 관계의 밀도가 높아짐 → 오히려 피곤
- ✅ 실패에 대한 불안: 소득이 일정치 않고, 혼자 결정해야 할 일이 많음
이런 감정은 비정상적인 것이 아니다. 시골은 도시보다 훨씬 더 ‘내면을 마주하게 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정신 건강을 지키는 구체적 방법들
1. 루틴을 정하고 지키자
자율성은 때로 위험하다. ‘일이 없으면 그냥 쉬면 되지’가 아니라, 할 일을 정해두는 것이 곧 건강을 지키는 방법이다.
- 오전 일과와 오후 일과를 나누어 정하기
- ‘쉬는 날’도 의도적으로 정해두기
- SNS는 특정 시간에만 사용
실제 루틴 예시:
- 오전 6시: 기상, 간단한 스트레칭
- 오전 7-11시: 농사일 (작물 관리, 물주기 등)
- 오후 12-1시: 점심 및 휴식
- 오후 2-5시: 농장 정리, 판매 준비
- 저녁 6-8시: 저녁 식사, 가족 시간
- 밤 8-10시: 독서, 일기, 개인 시간
2. 혼자 있는 힘을 기르자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나기 때문에, 혼자 노는 능력, 혼자 생각을 정리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 일기 쓰기, 명상, 산책
- 라디오나 팟캐스트 듣기 (사람 목소리의 안정 효과)
추천 활동:
- 농장 일기 쓰기: 매일의 농사일, 날씨, 작물 상태를 기록하면서 자연스럽게 하루를 정리
- 새벽 산책: 일출을 보며 하루를 시작하는 루틴, 자연과 교감하는 소중한 시간
- 계절별 관찰 기록: 같은 장소에서 계절 변화를 사진으로 기록하며 시간의 흐름 체감
- 손작업 취미: 뜨개질, 목공, 도자기 등 손으로 만드는 활동의 치유 효과
3. 커뮤니티에 조금은 기대자
혼자서 모든 걸 해내야 한다는 생각은 독이 된다. 각 지자체와 농업기술센터, 귀농귀촌지원센터에서는 다양한 모임과 강좌를 운영하고 있다.
- 농업기술센터: 기술교육, 품목별 모임
- 귀농귀촌지원센터: 또래 귀농인 멘토링, 정기 교류회
- 주민자치센터: 문화 강좌, 마을 행사
4. 심리적 지원 제도 활용하기
일부 지자체는 농촌 주민을 위한 심리상담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지역 보건소, 농업 관련 센터, 여성농업인센터 등을 통해 신청 가능하다.
- 무료 심리상담, 정신건강 자가진단 프로그램 운영
- 농작업 스트레스 해소 프로그램 (원예치료, 미술치료 등)
5. 디지털 연결 활용하기
물리적으로는 떨어져 있어도 디지털을 통해 의미 있는 연결을 유지할 수 있다.
- 온라인 귀농인 커뮤니티: 전국 귀농인들과 경험 공유
- 화상통화로 도시 친구들과 정기 모임: 월 1회라도 꾸준히
- 농산물 직거래 플랫폼: 고객과의 소통을 통한 보람 느끼기
- 농사 브이로그: 일상을 기록하며 새로운 취미 발견
귀농은 단절이 아닌 ‘선택적 연결’
도시에서는 관계와 자극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시골로 내려왔다. 그렇다고 완전히 모든 연결을 끊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내가 원하는 만큼,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연결을 설계할 수 있는 삶. 그것이 바로 내가 귀농을 준비하며 그리고 있는 삶의 형태다.
귀농은 외로움이 아니라, 고요함을 선택하는 것이다.
귀농은 단절이 아니라, 선택적 연결의 시작이다.
귀농은 외로움이 아니라, 고요함을 선택하는 것이다. 귀농은 단절이 아니라, 선택적 연결의 시작이다.
중요한 것은 이런 변화가 자연스러운 적응 과정이라는 걸 인정하는 것이다. 처음 몇 개월, 심지어 몇 년간 마음이 흔들릴 수 있다. 그것을 부정하거나 억지로 극복하려 하지 말고, 천천히 내 속도에 맞춰 적응해가면 된다.
시골에서의 삶은 도시와는 다른 종류의 만족감을 준다. 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끼고, 내가 기른 작물을 직접 수확하는 기쁨,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을 매일 볼 수 있는 특권. 이런 것들이 쌓여 새로운 형태의 행복을 만들어간다.
귀농을 준비하는 모든 분들이 건강한 마음으로,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