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귀농 실천 가이드 #71] 귀농 정착지 선정과 지원금 함정
지원금 많다고 정착하진 않는다 – 귀농 정착지 선정과 지원금 함정
귀농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먼저 보이는 키워드는 '지원금'이다. “최대 5억 창업자금 지원!”, “주택 구입비 70% 융자!” 같은 문구는 도시 청년들에게 솔깃하게 다가온다. 나도 그랬다. 하지만 직접 발로 뛰며 조사하고, 실제 사례를 접하고 나서야 알게 됐다. 지원금이 많다고, 그곳이 정착지로 좋은 건 아니라는 것.
이번 글에서는 예비 귀농인이 흔히 빠지는 ‘지원금 중심 사고’에서 벗어나, 진짜 정착지를 찾기 위해 어떤 기준을 세워야 하는지 공유해보려 한다.
“지원금 많은 곳 = 좋은 곳?”이라는 환상
지자체마다 귀농 유치를 위해 경쟁적으로 지원제도를 내놓는다. 특히 청년 귀농인 대상 사업은 금액도 크고 혜택도 풍성해 보인다. 하지만 막상 그 지역을 가보면, 현실은 전혀 달랐다.
- 지원금은 받았지만 마을과의 갈등으로 귀촌을 포기한 사례
- 시설을 지었지만 판매망이 없어 운영을 접은 농가
- 초기 1~2년은 버텼지만 교통, 병원, 교육 인프라 부족으로 이탈한 가족들
이처럼 금전적 지원이 있어도 생활 기반이 무너지면 오래 버티기 어렵다.
실제로 농림축산식품부 통계에 따르면, 귀농 가구 중 20-30%가 5년 내 다시 도시로 돌아간다고 한다. 그 이유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생활 환경 부적응'이다. 아무리 큰 돈을 받아도 아이들이 다닐 학교가 없고, 아플 때 갈 병원이 멀고, 이웃과 소통이 안 된다면 지속하기 어렵다.
정착지를 고를 때 더 중요한 5가지 기준
1. 생활권 인프라 (병원, 초중학교, 대중교통, 장보기 가능 상권)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요소다. 특히 가족과 함께 귀농하는 경우라면 더욱 신중해야 한다. 응급실이 있는 병원까지의 거리, 아이들이 다닐 학교의 규모와 교육 여건, 주 2-3회는 이용해야 할 마트나 시장까지의 접근성을 꼼꼼히 따져보자.
내가 탐방했던 한 지역은 지원금이 전국에서 가장 많았지만, 가장 가까운 응급실이 차로 1시간 30분 거리에 있었다. 실제로 그 지역 주민들은 "밤에 응급상황이 생기면 정말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2. 기후와 토양 조건 (내가 재배하고 싶은 작물이 잘 자라는 환경인지)
아무리 좋은 지원을 받아도, 내가 기대했던 작물이 그 지역 기후나 토양에 맞지 않는다면 농사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연평균 기온, 강수량, 일조시간뿐만 아니라 토양의 pH, 배수 상태, 경사도까지 세심하게 살펴봐야 한다.
특히 최근 기후변화로 인해 기존 재배 적지가 변화하고 있어서, 10년 전 데이터가 아닌 최근 3-5년 데이터를 기준으로 판단하는 게 좋다.
3. 지역 공동체 분위기 (외지인을 받아들이는 분위기인지, 갈등은 없는지)
농촌 사회에서 공동체와의 관계는 생존과 직결된다. 농기계 공동 사용, 물길 관리, 공동 농사일 등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많기 때문이다.
지역을 탐방할 때는 반드시 기존 귀농인들과 대화해보자. "처음 정착할 때 어려움은 없었는지", "마을 어른들과의 관계는 어떤지", "실제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인적 네트워크가 있는지" 등을 물어보면 생생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4. 지역 내 수요 (농산물 판로, 체험 농장 수요, 로컬마켓의 활성화 수준)
아무리 좋은 농산물을 재배해도 팔 곳이 없으면 소용없다. 지역 내 직거래 장터의 활성화 정도, 농협이나 도매시장과의 접근성, 관광객 유입량과 체험농장 수요 등을 미리 파악해두자.
특히 6차산업(생산+가공+판매+체험)을 계획하고 있다면, 그 지역의 관광 인프라와 방문객 규모를 정확히 알아보는 것이 필수다.
5. 생활비 수준 (수도요금, 농지세, 상하수도 연결 여부까지 꼼꼼히 확인)
도시보다 생활비가 싸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특히 난방비, 상하수도 요금, 농지세, 농기구 임대료 등은 지역마다 편차가 크다.
일부 지역은 상하수도가 연결되지 않아 정화조를 설치해야 하고, 이 경우 관리비용이 만만치 않다. 또한 겨울철 난방비는 도시 아파트의 2-3배가 들 수도 있으니, 연간 생활비를 꼼꼼히 계산해보자.
이런 요소들은 직접 가보지 않으면 느낄 수 없다. 지도상으론 좋아 보여도 막상 가보면 "버스 하루 1대", "마트까지 차로 40분" 같은 정보들이 발목을 잡는다.
지원금보다 중요한 것: ‘나에게 맞는 구조’
지원금은 어디까지나 ‘도움’일 뿐이다. 그보다 중요한 건 내가 어떻게 살고 싶은가, 어떤 구조 속에서 일하고 싶은가이다.
- 매일 이웃과 소통하며 살아가고 싶은가?
- 혼자 조용히 자급자족형으로 살고 싶은가?
- 가족과 함께 다양한 체험 콘텐츠를 운영하고 싶은가?
이런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선택지는 완전히 달라진다. 지원금은 나중 문제다. 먼저 ‘나만의 농사 구조’,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삶의 속도’를 설계해야 한다.
예비 귀농인을 위한 경고
지원금 조건은 엄격하다. 대부분 ‘귀농일 기준 5년 이내’, ‘창업계획서 승인’, ‘교육 이수’ 등 까다로운 절차가 있고, 중도 포기 시 전액 환수되기도 한다.
또한 자금 대부분이 ‘융자’ 방식이기 때문에, 갚아야 할 빚이 되는 경우도 많다.
‘공짜 돈’이라는 착각은 금물이다. 오히려 지속 가능한 모델을 먼저 설계하고, 이후 필요한 만큼만 ‘도구로서의 자금’을 활용해야 한다.
지원금 신청 전 반드시 확인해야 할 것들
- 상환 조건: 융자금의 이자율, 상환 기간, 중도 상환 수수료
- 의무 조건: 최소 거주 기간, 농업 종사 의무, 정기 보고 의무
- 제재 조건: 중도 포기 시 환수 범위, 연체 시 가산금
- 실제 지급 시점: 신청부터 실제 자금 수령까지의 소요 기간
- 사용 용도 제한: 자금 사용처의 제한사항 및 영수증 관리 의무
지원금은 ‘보너스’다
나는 이제야 안다. 내가 살아갈 마을, 내가 만들 농장의 그림이 먼저이고, 지원은 거기에 더해지는 부속품이라는 것을.
"어디가 많이 주느냐"보다 "어디서 오래 살 수 있느냐"가 진짜 핵심이다.
귀농은 단순히 직업의 변화가 아니라 삶의 방식을 완전히 바꾸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신중하고 체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지원금에 현혹되어 성급한 결정을 내리기보다는, 충분한 시간을 두고 나에게 맞는 정착지를 찾아가길 바란다.
다음 글에서는 내가 실제로 탐방했던 지역 중 '정착 기준'에 부합했던 마을 사례를 바탕으로, 어떤 방식으로 '최종 후보'를 좁혀갔는지를 공유하려 한다.
예비 귀농인에게, 진짜 나에게 맞는 땅을 찾는 여정이 시작되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