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귀농 실천 가이드 #63] 이곳은 다를 수 있을까 – 두 번째 정착 후보지에서 느낀 가능성
첫 번째 마을의 아쉬움과 새로운 시작
A 마을을 돌아섰을 때, 한동안 망연자실했다. 이상과 현실 사이의 벽이 생각보다 높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귀농은 내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결정이고, 그만큼 여러 갈래의 길을 두드려보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첫 번째 마을 탐방에서 얻은 교훈은 명확했다.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좋은 토지 조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 귀농 성공의 열쇠는 결국 '사람'에게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게 찾아간 곳이 B 마을이다. 처음의 기대는 줄이고, '있는 그대로'를 보자고 다짐한 채로 길을 나섰다. 그런데 이 마을은, 뭔가 달랐다.
“내려서 첫눈에 느껴진 온도”
B 마을은 산을 끼고 있지만 완만한 지형에 자리한 마을이었다. 터미널에서 차를 타고 20분쯤 들어가자, 작지만 아담한 농협, 초등학교, 작은 우체국이 차례로 눈에 들어왔다. 무엇보다 마을회관 앞에 놓인 평상에 앉아 계시던 어르신들이 눈을 마주치자 먼저 인사를 건네주셨다. "어디서 오셨어요?" 그 말 한마디가 마을 전체의 온도를 바꾸어 놓았다.
첫 인상은 생각보다 중요했다. A 마을에서 받았던 시선들이 떠올랐다. 호기심 반, 경계심 반이었던 그 시선들과는 달리, 이곳 어르신들의 눈빛에는 순수한 관심과 따뜻함이 담겨 있었다. 마을 입구 정자에서 바둑을 두시던 분은 "점심은 드셨나요?"라고 물으시며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가셨다. 이런 작은 배려가 모여 마을의 분위기를 만든다는 걸 체감할 수 있었다.
“이장님이 먼저 차를 권하셨다”
도착 이틀 전, 미리 연락드린 마을 이장님은 바쁘실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내게 하루 시간을 내주시며 마을을 함께 돌았다. 처음엔 '땅 보러 왔냐'며 웃으셨지만, 내가 진지하게 이야기를 꺼내자 진심으로 응답해주셨다. "우린 아직 젊은 사람이 귀한 동네예요. 들어와 준다면 고맙지." '들어오면 고맙다'는 말. A 마을에서 받은 경계심과는 사뭇 달랐다.
이장님과의 대화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마을의 현실적인 문제들을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말씀해주신 점이었다. "겨울엔 정말 춥고, 인터넷도 가끔 끊어져요. 하지만 우리가 서로 도우면서 살아가니까 별로 불편하지 않아요." 이런 솔직함이 오히려 더 큰 신뢰를 주었다. 완벽한 조건을 과장하지 않고, 함께 어려움을 극복해나가자는 메시지가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여긴 아이들 목소리가 들린다”
그날 오후, 우연히 초등학교 방과 후 시간을 마주했다. 학교에서 나온 아이들이 서로 장난치며 마을 슈퍼로 달려갔다. 오랜만에 들은 아이들 웃음소리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이 마을에는 젊은 부부 귀농인도 몇 팀 있었고, 아이들도 있었다. '아, 이건 다르다.' 마을이 '살아 있다'는 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마을 슈퍼 앞에서 만난 30대 귀농인 부부는 3년 전 이곳에 정착했다고 했다. "처음엔 걱정이 많았는데, 아이들이 자연 속에서 뛰어노는 모습을 보니 잘 왔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들의 7살 딸은 마을 할아버지, 할머니들과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누며 뛰어다녔다. 이런 모습이 바로 내가 꿈꾸던 귀농 생활의 모습이었다.
초등학교 담임선생님과도 잠깐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우리 학교는 전교생이 23명이에요. 작지만 아이들이 모두 가족처럼 지내죠. 귀농 가정의 아이들도 금방 적응해요." 도시의 과밀한 교육 환경과는 확연히 다른 여유로운 분위기가 느껴졌다.
“불편하지만, 그래도 움직이고 있었다”
교통은 불편했다. 읍내로 나가려면 하루 두 번밖에 없는 마을버스를 이용하거나, 자가용이 필수였다. 병원도 30분 거리. 하지만 특이하게도 이 마을엔 '주말 셔틀'이 있었다. 귀농자협의회에서 운영하는 자율 차량 공유 시스템으로, 주말마다 마을 주민들이 읍내를 함께 다녀온다고 했다. 작은 시도지만, 불편함을 해결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는 점이 내겐 크게 다가왔다.
마을 카페에서 만난 40대 귀농인은 이런 공동체 활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처음엔 모든 게 불편했어요. 하지만 주민들이 서로 도우면서 하나씩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걸 보니, 이게 진짜 공동체구나 싶었어요." 그는 마을 청년회 활동을 통해 온라인 직거래 시스템을 구축하고, 도시 소비자들과 연결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마을 공동 작업장이었다. 폐교를 리모델링해 만든 이 공간에서는 주민들이 함께 농산물을 가공하고, 수공예품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었다.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들도 여럿이 모이면 가능해져요." 이런 협력 시스템이 귀농 생활의 경제적 기반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이 마을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교통은 불편했다. 읍내로 나가려면 하루 두 번밖에 없는 마을버스를 이용하거나, 자가용이 필수였다. 병원도 30분 거리. 하지만 특이하게도 이 마을엔 '주말 셔틀'이 있었다. 귀농자협의회에서 운영하는 자율 차량 공유 시스템으로, 주말마다 마을 주민들이 읍내를 함께 다녀온다고 했다. 작은 시도지만, 불편함을 해결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는 점이 내겐 크게 다가왔다.
마을 카페에서 만난 40대 귀농인은 이런 공동체 활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처음엔 모든 게 불편했어요. 하지만 주민들이 서로 도우면서 하나씩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걸 보니, 이게 진짜 공동체구나 싶었어요." 그는 마을 청년회 활동을 통해 온라인 직거래 시스템을 구축하고, 도시 소비자들과 연결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마을 공동 작업장이었다. 폐교를 리모델링해 만든 이 공간에서는 주민들이 함께 농산물을 가공하고, 수공예품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었다.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들도 여럿이 모이면 가능해져요." 이런 협력 시스템이 귀농 생활의 경제적 기반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귀농 준비의 새로운 관점
B 마을을 둘러보면서 귀농 준비에 대한 관점이 바뀌었다. 단순히 농사 기술을 배우고 자본을 모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걸 깨달았다. 더 중요한 것은 공동체 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찾고, 함께 문제를 해결해나갈 수 있는 소통 능력과 협력 정신이었다.
마을 도서관에서 만난 퇴직 교사 출신 귀농인은 이런 조언을 해주었다. "귀농 전에 가장 중요한 준비는 마음가짐이에요. 도시에서의 편리함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방식의 풍요로움을 받아들이는 거죠." 그의 말처럼, 귀농은 단순한 생활 방식의 변화가 아니라 가치관의 전환이었다.
[예비 귀농인을 위한 한 줄 조언]
단점을 보완하려는 '의지'가 있는 마을은, 정착할 수 있는 마을이다.
귀농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니다. 사람 사이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B 마을에서 나는 단지 '귀농지'가 아니라 '함께 살 수 있는 공동체'를 봤다. 이제, 이곳을 중심으로 본격적인 계획을 세워보려 한다. 다음 글에서는 내가 B 마을에서 상상하고 있는 '정착 후의 일상'을 구체적으로 나눠보겠다. 귀농이 그저 삶의 대안이 아니라, 삶의 '목적'이 되려면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B 마을에서의 하루는 내게 귀농에 대한 새로운 희망을 안겨주었다. 완벽한 조건은 아니지만, 함께 만들어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곳. 그것이 진정한 귀농지의 조건이 아닐까 싶다. 이제 구체적인 정착 계획을 세우며, 새로운 삶의 준비를 시작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