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귀농 실천 가이드 #61] 집은 아직 못 구했지만, 확실히 알게 된 것들 – 나에게 맞는 시골집 찾기의 기준
지금 나는 아직도 ‘어디에서, 어떤 집에서, 어떤 조건으로’ 살아갈지를 고민 중이다.
귀농을 결심한 지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고, 여러 지역을 답사했으며, 마을도 여러 번 들러봤지만…
내가 실제로 살아갈 집을 구하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어렵고도 복잡한 문제였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시간이 지날수록 한 가지는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다.
“내가 진짜 원하는 삶의 방식은 무엇인가.”
집을 아직 구하지 못한 지금, 되레 그 빈자리를 채운 건 나만의 ‘주거 기준’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싸고, 들어갈 수 있는 집’이면 된다고 생각했다
귀농 초기, 나는 ‘빈집’이라는 단어에 무조건 반응했다.
귀농 카페나 블로그에 ‘1,000만 원짜리 시골집’ 사진이라도 올라오면 그날 하루는 온통 그 생각뿐이었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고쳐서 살면 되지 뭐.’
‘처음부터 좋은 집 바라는 게 욕심 아닐까?’
지금 와서 보면, 현실을 몰랐기 때문에 가능한 낙관이었다.
집이 저렴하다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내가 본 빈집 중에는 사람이 10년 넘게 살지 않은 채 방치된 곳도 있었고,
처마가 무너졌거나 지붕에 구멍이 난 채 비닐로 덮여 있는 집도 있었다.
마당은 온통 잡초밭이고, 창틀에는 곰팡이가 핀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직접 가보니 알겠더라.
“사는 집”과 “살 수 있는 집”은 전혀 다르다.
품을 팔수록 바뀐 생각 – ‘내가 지치지 않을 집’을 찾아야 한다
한 달 넘게 이 마을, 저 마을을 돌아다니며 집을 본 경험이 나에게 가르쳐준 건 이것이었다.
‘버틸 수 있는 집’이 아니라, ‘살아지고 싶은 집’을 찾아야 한다는 것.
- 단열 안 되는 시멘트 벽의 냉기
- 벌레가 쉽게 들어오는 틈
- 지붕에 물이 스며드는 비 오는 날의 공포
- 물이 잘 안 내려가는 화장실
그런 조건 속에서 매일을 살아간다는 건 상상보다 훨씬 큰 에너지 소모였다.
집은 ‘몸을 쉬게 하는 공간’이어야 하는데,
그 공간 자체가 스트레스가 된다면
귀농 생활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걸 절감했다.
지금은 이렇게 생각한다 – 나에게 필요한 시골집의 기준
아직 집을 구하진 못했지만,
적어도 내가 어떤 집을 원하는지,
어떤 조건은 포기해도 되는지,
어떤 요소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지는 확실히 알게 되었다.
지금 내가 정리한 ‘시골집 선택 기준’은 다음과 같다:
- 기본적인 생활 인프라가 작동하는가?
- 수리 여부가 아니라, ‘당장 입주 가능한가’ 여부
- 보일러 / 전기 / 수도 / 화장실 / 방충 상태
- 수리 여부가 아니라, ‘당장 입주 가능한가’ 여부
- 벽에 금이 간 집, 천장 누수 흔적 있는 집은 제외
- 도배·장판 수준은 감수할 수 있지만, 구조적인 문제는 피한다
- 하루 두 번은 햇빛이 드는 구조여야 한다
- 시골은 생각보다 어둡고 눅눅하다. 햇살은 생각 이상으로 중요하다
- 이웃과 너무 붙어 있지 않으면서도, 외떨어져 있지 않은 위치
- 공동체 속의 독립성. 이건 말처럼 쉽지 않지만 계속 시도 중이다
- 도시와의 거리보다, 마을 안의 ‘접근성’을 본다
- 마트/약국/버스/우체국까지 얼마나 걸리는지
- 매일 필요한 건 서울보다 바로 옆 마을이기 때문이다
- 수리 가능성보다, 내가 ‘살고 싶은 마음’이 드는지 본다
- 이건 감각이다. 설명할 수 없지만, 가면 안다
집을 찾는 중에도, 나는 조금씩 귀농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나는 아직 귀농하지 않았다.
정착지도 확정되지 않았고, 땅도 없고, 집도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하나씩 내가 원하는 조건을 찾아가는 이 과정 자체가 이미 귀농의 일부라는 생각이 든다.
‘집을 구하는 중’이라는 이 상태가
나를 더 솔직하게 만들고,
내 삶의 우선순위를 명확히 해주고 있다.
내가 정말 원하는 건 무엇인지,
이 삶을 선택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매일 질문하게 만든다.
예비 귀농인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
혹시 지금 이 글을 읽으며
‘나도 집을 아직 못 구했는데 괜찮은 걸까?’
‘나는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는 걸까?’
라고 자책하고 있다면, 걱정하지 마시길 바란다.
오히려 그 고민을 충분히 하는 당신이 훨씬 더 제대로 준비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귀농은 속도보다 방향이다.
집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당신의 삶을 담는 그릇이다.
조금 늦어도 좋다.
하지만 그 그릇이,
당신의 삶을 버겁지 않게 담아줄 수 있어야 하니까.
나 역시 아직 구체적인 주소를 갖고 있진 않지만,
마음속에선 어느새 내 삶의 틀을 하나하나 정해가고 있다.
그 방향이 분명하니, 집은 언젠가 자연스럽게 만나게 될 것이다.
지금 이 고민과 시간이,
나의 삶을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드는 중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