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과 귀촌

[청년 귀농 실천 가이드 #60] “빈집의 현실,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 내가 마주한 시골 주택 구하기”

윤복E 2025. 7. 17. 14:44

귀농을 결심하고 정착지 탐색에 한창이던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땅도 봤고, 사람도 만나봤고, 분위기도 파악했는데… 정작 살 집은 어디서 구하지?”
그러고 나서야 깨달았다. 귀농의 시작은 집부터라는 것을.

귀농은 단순히 이사 가는 게 아니다.
이건 삶터를 바꾸는 일이고, 일터와 주거지가 동시에 하나가 되는 공간을 구하는 작업이다. 그런데 막상 빈집이나 주택을 직접 알아보려 하자, 현실은 생각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녹록지 않았다.

빈집의 현실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빈집 많다면서요?”

– 실제로 보면, 살 만한 집은 별로 없다

귀농 선배들이나 뉴스 기사에서는 "시골에는 빈집이 많다"고 말한다.
그 말이 틀리진 않다. 실제로 마을을 돌다 보면 사람이 살지 않는 듯한 집들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 대문은 녹슬고 마당엔 잡초가 자라 있고, 창문은 깨진 채 방치된 경우도 많다. 그런데 이 집들 중 실제로 살 수 있는 집은 극히 일부다.

왜냐고?
1. 집주인이 연락이 안 되거나, 팔 생각이 없음.
– "저 집 주인, 10년 전 도시에 이사 간 뒤 연락 끊겼어"
– "상속 문제 걸려 있어서 못 팔아"

2. 수리비가 집값보다 더 듦.
– 지붕 샌다, 보일러 없다, 수도 안 나옴
– 정화조가 아니라 재래식 화장실도 여전히 존재함

3. 법적으로 주거 전환이 불가능한 경우도 있음.
– 농막이나 창고로 등록된 곳은 원칙적으로 거주가 불가

나는 이런 집들을 최소 10채 이상 직접 가서 봤다.
지도에 핀 꽂아두고, 마을회관 들러 물어보고, 동네 주민들께 "혹시 빈집 나오는 거 있냐"고 묻기도 했다.
처음엔 창피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물을 수 있게 됐다.
시골에서는 ‘입소문’이 곧 부동산이다.

 

부동산 사무소? 믿을 만한데가 생각보다 드물다

귀농을 처음 준비할 때, 나도 당연히 ‘네이버 부동산’이나 ‘다방’ 같은 앱을 열었다. 그런데 시골 집들은 그런 플랫폼에 거의 올라와 있지 않다. 지방마다 다르지만, 농촌 주택 정보는 1) 읍내의 작은 부동산, 2) 지역 카페, 3) 지자체 빈집은행 세 군데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이 또한 경험해보니 한계가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읍내 부동산은 “귀농인이 집 물어보면 소개 안 해요”라고까지 하기도 했다.
왜냐면... ‘빈집=골치 아픈 일’로 생각하는 중개업자들이 꽤 많기 때문이다. 계약이 잘 성사되지 않고, 하자 문제나 관리 책임 문제로 분쟁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결국 ‘지자체 빈집은행’을 뒤져보기 시작했다.
그나마 공식적으로 관리되는 시스템이라 믿을 만하다고 생각했는데, 올라온 매물 대부분이 정보가 오래됐거나, 사진과 다르거나, 이미 거래가 끝난 경우가 많았다. 전화를 돌려보면 "그건 벌써 나갔어요"라는 답변을 가장 많이 들었다.

 

예비 귀농인이 할 수 있는 현실적인 접근법

그렇다면, 지금 내가 생각하는 **예비 귀농인이 실제로 할 수 있는 ‘주택 탐색 루트’**는 이렇다.

1. 지자체 귀농귀촌 지원센터에 미리 연락해라

전화 한 통만으로 ‘빈집 보유 여부’, ‘임대주택 유무’, ‘소개 가능한 부동산’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지역마다 담당 공무원이 정말 친절하게 응대해주는 경우도 많다.

2. ‘빈집’보다는 ‘임대 가능 주택’부터 찾아라

집을 소유하는 게 목표라면 장기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하지만 초보 귀농인 입장에선 ‘먼저 살아보기 위한 임대’가 더 현실적이다.
몇몇 지자체는 귀농인 대상 장기임대주택(1~3년)을 운영 중이다.

3. 귀농 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단기 체류’부터 시도하라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지자체 제공 숙소나 마을의 임시주택에서 생활할 수 있다.
이건 집을 고르는 ‘시선’이 아닌, 직접 살아보는 ‘몸의 감각’을 만들어준다.
나는 이 경험을 통해 “이런 구조는 불편하겠구나” “이 위치는 겨울에 바람이 세겠다” 같은 감을 얻었다.

4. 마을회관 방문은 필수다

정말 중요한 건 여기다. 빈집 정보는 의외로 마을 어르신들이 제일 잘 안다.
"저 집 주인이 서울 사는데, 이장님이 연락처 알아요"라는 말은 직접 들은 얘기다.
그래서 지금은 마을 가면 꼭 회관부터 들러 인사하고, 차라도 한 잔 얻어마신다.
그런 관계 속에서 정보가 흐르고, 신뢰가 생긴다.

 

빈집 찾기, 나만의 실패 사례

사례 하나 소개한다.
충북 모 지역의 한 농촌 마을.
현장 사진으로 봤을 땐 고택 스타일의 멋진 한옥 빈집이었고, 가격도 매력적이었다.
직접 가봤더니...

  • 실내 벽지는 곰팡이 범벅
  • 장판은 들떠서 걸을 때마다 ‘뚝뚝’ 소리
  • 욕실은 외부에 단독 설치되어 있고, 겨울엔 얼어서 못 씀
  • 전기배선이 낡아 누전 위험

집 자체는 고풍스럽지만, 이걸 수리해서 ‘사람이 살 수 있는 상태’로 만들려면 최소 수천만 원이 든다는 말에 돌아서야 했다. 그땐 정말 아쉬웠다. 하지만 그때의 경험 덕분에 ‘외형’보다 ‘기본 인프라’를 먼저 체크하게 됐다.

 

지금 나는?

아직 확정된 집은 없다.
하지만 현재는 충남 논산 인근 한 마을에서 3개월 임시 체류를 계획 중이다.
마을이 자체적으로 귀농인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어서, 작은 단독 주택을 저렴하게 임대해주고, 마을 이장님과 농작업도 함께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주택을 고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살아보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집을 보러 간다’기보다 ‘살아보러 간다’는 마음으로 발품을 팔고 있다.

 

“빈집 많다면서요?”라고 물은 게 불과 몇 달 전이지만,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빈집은 많지만, 살 만한 집은 적다.
그리고 그 집은, 결국 발품으로 만난다.

지도에는 안 나온다.
부동산엔 안 올라온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있다.
마을에 들어가 인사를 나누고, 관계를 쌓다 보면
어느 날 갑자기 “저기 집 하나 나왔는데, 관심 있어요?”라는 말이 들려온다.

귀농은 그렇게 조금씩 나에게 다가오고 있다.
한 채의 집을 만나기 위한, 오늘의 걸음도 소중하다.